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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소금과 빛이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세습문제에 대한 신학적 조명"에 대한 세습 반대 논찬
 
오덕호
호남신학대 교수

 
1. 시작하는 말
 
이 글의 기본적인 성격은 한국교회의 세습문제가 잘못된 것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이 주재용 박사, 김성수 박사, 김인수 박사의 발표에 대한 논찬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발표자의 의견에 대한 평가와 질문보다 세습 혹은 세습과 유사한 행위들을 반대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자 한다.
 
'한국교회의 세습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용어를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에 발생한 세습 문제에는 단순히 세습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할 표현 중에 '담임목사직 세습'이란 용어는 담임목사의 자녀가 혈연에 힘입어 후임목사가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을 줄여서 '세습'이라고 부를 것이다. 반면에 정당한 절차에 따라 최선을 다해 청빙한 결과 담임목사의 자녀를 청빙하게 되는 경우는 '담임목사 자녀 청빙'이라고 표현하며 줄여서 '자녀 청빙'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우리가 '세습'과 '자녀 청빙'을 구별하여 살펴본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체로 사람들은 정당하게 되었든 부당하게 되었든 구별하지 않고 담임목사의 자녀가 후임목사가 되는 것을 '세습'이나 '대물림'이라는 단어로 같이 표현하므로 유의하지 않으면 우리의 논의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세습'은 담임목사의 자녀가 혈연에 힘입어(부당하게) 후임목사가 되는 것이고 '자녀 청빙'은 담임목사의 자녀가 정당하게(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후임목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교회세습'이란 단어는 없어져야 할 말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어떤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교회의 어떤 직분이 세습되어도 그에 따라 교회가 세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습되어서도 안 되고 세습될 수도 없다. 담임목사직은 세습될 수 있어도 그에 따라 교회까지 세습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칙적으로 그런 것일 뿐 불행하게도 불신자들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신자들까지 실제로는 교회가 세습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한국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면 이런 용어는 없어질 것이다. 속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교회의 정의에 맞지 않는 '교회세습'이라는 용어는 여기서 사용하지 않기로 한다.
 
현재 한국교회에 심각하게 대두된 문제는 담임목사직의 세습이나 자녀 청빙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은 접근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 문제에 대답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세는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답을 찾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필요한 자세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특정한 교회의 형편에 비추어 이 문제를 생각하기보다 한국교회 전체의 형편에 비추어 이 문제를 생각하려고 한다. 이 논의가 몇몇 교회의 안정과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발전과 한국사회의 복음화를 모색하기 위한 토론이기 때문이다. 또한 원리나 규범은 특정한 사람에게 맞춰 결정할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성 있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람을 위해 규범을 만드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특수한 사람도 보편타당한 규범은 인정해야 한다. 그 후에 자신의 특별한 사정에 대해 별도의 양해를 얻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다.
 
둘째,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주후 2000년의 한국교회 현실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18세기에 적합한 규범을 찾아도 안 되고 서양에서 통용되는 규범을 그냥 받아들여도 안 된다.
 
셋째, 영원한 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현재 우리에게 적합한 원리를 찾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당시 교회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이방인들에게 전도할 때 할례도 받고 율법도 지키게 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그들의 결론은 할례와 율법의 짐은 지우지 말고 네 가지 금령만 정해주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 회의에서 결정된 금령은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결정이 당시의 교회에는 크게 유익한 것이었다(행 15:31; 16:4-5). 우리도 이런 원리에 입각하여 현재 우리에게 적합한 규범을 찾고자 한다.
 
이렇게 답을 찾는 것이 성서적으로 맞는 자세인지는 우리의 논의 중에 검증될 것이다.
 
 
2. 거짓 선지자의 세 유형
 
'담임목사직 세습'이나 '담임목사 자녀 청빙'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거짓 선지자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찾기 위해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저지른 실수를 피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짓 선지자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특정한 사람을 거짓 선지자로 몰아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찾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성경에는 크게 세 부류의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
 
첫 번째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잘못된 내용을 전하는 선지자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자고 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거짓 선지자이다(신 13:1-5).
두 번째 거짓 선지자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적용을 잘못하여 결과적으로 잘못된 교훈을 주는 선지자이다. 예를 들어 분단된 이스라엘의 남 유다 왕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짓는데도 그들이 망하지 않고 평강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거짓 선지자들이다(렘 6:14; 7:4, 10 참조). 하지만 그들의 그런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자손이 영원히 유다 왕국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삼하 7:8-17). 그들은 이 약속을 근거로 유다 백성들에게 그런 예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백성들에게 필요한 말씀은 다윗과 맺은 약속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율법의 말씀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 시대에 적합한 말씀을 전하지 못하여 즉, 적용을 잘못하여 거짓 선지가가 된 것이다. 그 시대에는 시내산의 계약을 가지고 경고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가 참 선지자이다.
 
세 번째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고 적용도 바로 하여 말로는 옳은 교훈을 주지만 자신이 악하게 사는 선지자이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사람들을 단지 그들이 불법을 행했다는 이유만으로 거짓 선지자라고 하신다(마 7:15-23). 그들이 거짓 선지자인 이유는 거짓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며 또한 말로는 바르게 가르쳤지만 행동으로는 사람들을 악한 길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선지자의 말에 의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으로부터도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 세습이나 자녀 청빙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이 거짓 선지자가 될 위험이 있는가? 먼저 세습이나 자녀 청빙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가르치면 거짓 선지자가 된다. 둘째, 원리적으로는 바른 것을 가르쳐도 적용이 잘못되면 거짓 선지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습이나 자녀 청빙에 대해 성서적으로 맞는 원리인가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에 바르게 적용되는 말씀인가도 따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 성서적으로 맞는 자세이고 거짓 선지자가 되지 않는 길이다. 셋째, 자기가 양심에 거리낌없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성서의 교훈이나 교회법에 따라 행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오도하여 악을 행하게 한다면 거짓 선지가가 될 위험이 크다.
 
이제 오늘날 한국에서 담임목사직 세습이나 자녀 청빙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행동해야 거짓 선지자가 되지 않고 바르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인지 살펴보자.
 
 
3.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것이 옳은가?
 
담임목사의 자녀라는 이유로 담임목사직을 이어받는 것은 잘못이다. 담임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가 청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습'이 잘못이라는 것은 '자녀 청빙'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마저 '세습'이란 단어는 싫어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세습이 옳지 않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정리해본다는 의미에서 세습의 부당성을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습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전에 이미 혈연으로 담임목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혈연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는 것이므로 잘못이다. 고린도전서 12:28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또한 갈라디아서 1:1-2는 사도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다고 한다. 그런데 목사는 최소한 사도적 사명, 선지자적 사명, 교사적 사명, 다스리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목사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시는 것인데 혈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어떻게 옳은 일일 수 있겠는가.
 
둘째, 교회법에 의하면 교회의 정당한 평가와 결의에 따라 담임목사가 결정되어야 하는데 담임목사의 자녀라는 이유로 후임목사가 된다면 교회법을 어기는 것이다. 교회의 결의와 무관하게 이미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법을 어기는 것은 공동체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므로 잘못이다(시 15:4). 또한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므로 교회를 세우신 후 교회의 질서와 규범을 통해 역사하시는데(고전 14:33) 교회법을 어기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므로 잘못이다.
 
하나님은 교회 직분자를 선정하실 때 직접 선택하시거나 교회를 통해 선택하신다. 직접 선택하시는 예는 앞에서 살펴보았고(갈 1:1-2) 교회를 통해 선택하시는 예를 두 가지만 들면 다음과 같다. 가룟 유다의 후임으로 사도를 뽑을 때 그 자격과 최종 두 후보를 교회가 결정한 것(행 1:15-26)과 일곱 사역자를 뽑을 때 그 자격과 대상을 교회가 결정한 것이다(행 6: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 방법인 교회법을 어기고 교회의 모든 회의와 결의를 무시하며 자녀가 특혜를 받아 후임목사가 되는 세습은 성서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
 
셋째, 담임목사직을 지원한 다른 사람과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으므로 불공평한 일이다. 예수님도 마가복음 3:31-35에서 예수님의 혈연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심으로써 신자들은 다 같은 가족이고 다 공평한 위치에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담임목사의 자녀라는 이유로 후임목사가 된다면 그것은 불공평하고 악한 일이다.
 
넷째, 세습을 구약의 제사장직 대물림과 연결하여 정당화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구약의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아론 가문에게만 맡기셨으나 신약의 감독직은 특정 가문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적절한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딤전 3:1-7). 신약성경에서는 주의 일이 가문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사도직이 자녀에게 승계된 경우가 신약성경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의 동생이 중직을 맡은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할 것이다.
 
다섯째, 담임목사가 큰 교회로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해서 그의 자녀에게 특혜를 주어도 된다는 생각은 비신앙적인 발상이다. 누가복음 17:10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하라." 그렇다면 많은 사역을 한 목사라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지분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고린도전서 4:6에서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라고 하신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교회 발전의 공로를 목사에게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의 힘으로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비신앙적인 자세이다.
 
이렇게 담임목사직을 자녀라는 특권으로 이어받는 세습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교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세습을 반대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세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녀 청빙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한 자녀 청빙이 되기 위해서는 혈연이 전혀 작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 청빙에 혈연의 특권이 작용했는지는 교회마다 다를 것이고 각 교회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한국교회의 상황을 볼 때 혈연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김성수 박사가 잘 지적해주고 있다.
 
더욱이 한국사회에는 연고에 따라 불공평하게 일이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교회 교인들의 삶이 일반인들의 삶과 많이 다르지 않다면 목사들 중에도 혈연에 의해 불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분이 있을 것이고 혹시 목사는 그렇지 않더라도 교인들이 목사의 혈연에게 특혜를 줄 가능성이 많이 있다. 이것은 다 세습에 속하는 것이므로 결국 한국교회에는 세습이 많고 자녀 청빙은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세습이 아닌 정당한 자녀 청빙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녀 청빙은 해도 좋은 것인가?
 
 
4. 담임목사의 자녀를 청빙하는 것은 옳은가?
 
아마도 우리의 주요 논쟁은 이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담임목사의 자녀를 정당하게 후임 목사로 청빙하는 것이 잘못인가?" 만일 영원한 진리를 말하자면 이것은 잘못이 아니다. 담임목사가 되는 데 특정인이 특권을 가져도 안 되지만 배제되어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전제한 대로 우리는 여기서 영원한 진리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현실에 적합한 규범을 찾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도 현실에 바로 적용하지 못하면 독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십일조를 잘 바치고 교회에 잘 나오는 신자가 자기 기업체에서는 근로자를 착취하는 악덕 기업인이라고 하자. 목사가 그 집에 심방을 가서 "십일조 잘 바치면 복을 받고, 교회에 잘 나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설교만 하면 그 신자는 계속해서 악덕 기업인으로 살다가 아마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 이 경우 설교 말씀은 진리지만 그 진리의 말씀이 그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되지 못하고 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죄짓는 유다 백성들에게 다윗계약을 근거로 평화만을 선포한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였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내용이 원칙적으로 옳은 가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바르게 적용되고 있는 가도 따져야 한다. 이것이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성서적으로 사는 자세이다.
 
그러면 현재 한국교회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람들이 혈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한국인의 중요한 사회적 성격은 가족주의이다. 둘째, 한국인은 연줄을 많이 따지는데 연줄 중에 대표적인 것이 혈연이다. 셋째, 한국인들은 편견이 심하다. 예를 들어 "어느 도 사람은 어떻다"고 말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모습들로 인해 한국사회에는 혈연이 있는 사람에게 특별대우를 하려고 하거나, 혈연에 의해 도움을 받으려고 하거나, 혹은 혈연으로 인해 공사구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한국사회에서는 혈연으로 인해 불공정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한국사람들은 혈연을 비롯한 연고에 의해 많은 것이 부당하게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연구소가 90년 3월 1,925명의 행정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3.2%의 응답자가 출세의 조건으로 "연줄 및 배경"을 꼽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연구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 4명 가운데 3명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현재 위치를 성취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 연구는 우리사회가 아직도 '연줄 사회'라고 보고 있다.
 
한편 오늘의 한국교회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을 사회에 많이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부 대형 교회를 포함한 적지 않은 교회들이 교회는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들의 이권을 챙기는 조직이라는 이미지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가 대형교회의 자녀 청빙을 부와 권력의 세습이라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명예의 소수독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명예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한다. 이것을 아는 한국인들은 자녀 청빙을 교회의 주도 세력들이 자기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볼 위험도 있다. 왜냐하면 전혀 새로운 담임목사가 올 경우 그에 따라 새로운 체제가 형성되고 구 세력은 특권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사회에서는 교회의 정당한 자녀 청빙도 혈연에 의한 세습으로 보이게 된다. 또한 교회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하는 부당한 인사로 보이게 된다. 이것은 주재용 박사가 인용한 통계 중에 기독교 방송 조사에서 세습을 찬성하는 사람이 4%밖에 되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이 80%가 되었으며 기독교인터넷방송의 조사에서는 무려 92.5%가 반대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것은 일부 교회가 세습이 아니라 자녀를 정당하게 청빙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도 교회와 사회에서 계속하여 문제를 삼고 있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일부 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보기 어렵다. 사회에서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면 어떤 단체가 문제를 제기해도 그렇게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신문에 나온 '세습'에 대한 기사가 2000년 봄 이전에는 주로 재벌들의 재산이나 경영권 세습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주로 교회의 세습문제에 대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자녀 청빙이 한국교회에 덕이 되지 못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여 신앙생활에 큰 해를 입을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가 한국교회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고 따라서 선교에 크게 방해가 될 것이다.
 
여기서 자녀 청빙을 찬성하는근거 몇 가지를 검토해보자. 김인수 박사가 정리해준 대로 자녀 청빙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그 교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이지 한국사회 전체를 볼 때에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몇 교회가 자녀 청빙을 통해 발전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생긴 긍정적인 효과(예를 들어 선교효과)보다는 그것을 세습으로 본 사회와 일부 교인들이 실망하여 생기는 부정적인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다.
외국에는 자녀 청빙이 많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 것도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회관습이나 문화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만큼 혈연이 강하지 않고 또한 성도들의 의사가 투명하게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 자녀 청빙을 세습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가족주의와 연줄의 영향이 크므로 다수의 사람들이 자녀 청빙을 세습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외국에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지금 우리 나라에서의 자녀 청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또한 예수님의 가족들이 초대교회에서 많이 활동한 것을 근거로 지금 한국교회에서 담임목사의 가족이 중직을 맡는 것을 정당화하고 궁극적으로 자녀 청빙을 합리화하려는 것도 올바른 성경해석이 아니다. 우선 그것이 현재 우리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논의하였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성경본문이 있다. 그것은 마가복음 3:31-35이다. 그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족들이 찾고 있다고 하자 예수님은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는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초대교회에서 수십 년 동안 구두로 전해지다가 나중에 복음서에 기록되었다. 그러면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많은 말씀들 중에 왜 이 말씀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구두로 전해주었을까? 그것은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의 친척들이 부당하게 특별대우를 받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신앙공동체에서 자신의 친척이 혈연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알려주셨고 초대교회도 그런 위험이 엿보이므로 그것을 막기 위해 수시로 이 본문을 교회에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 말씀은 구두로 계속하여 전해지다가 복음서에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예수님의 친척들 중에 교회에서 중직을 맡은 사람들이 있었어도 예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혈연의 특권을 방지하고 경계하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결코 그것을 빌미로 세습이나 자녀 청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이제 개 교회의 발전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녀를 청빙하게 되는 문제를 잠시 살펴보자. 이것도 우리가 개 교회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전체를 보고 또한 한국교회와 사회 전체를 본다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가르쳐준다. 사도행전 13:1-3을 보면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에게 명령하셔서 바나바와 사울(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도록 하신다.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그야말로 안디옥 교회를 부흥시킨 공로자들이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들이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안디옥 교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선교를 위해 그들을 교회에서 내보내신다. 안디옥 교회의 발전과 부흥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시고 선교를 우선으로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개 교회의 안정과 부흥에 혹시 도움이 되더라도 많은 교인들에게 상처가 되고 사회의 지탄을 받아 선교에 지장을 주는 자녀 청빙을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된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특정인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자녀 청빙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는 자녀가 객관적으로 그 교회를 위해 사역할 적당한 자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원로목사와 원활하게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것이 자녀의 특권을 고의적으로 이용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자녀이기 때문에 얻는 특혜이므로 실질적인 세습에 가깝다. 우리는 교회에서 인간이 지나치게 중요해지는 모습을 제거함으로써 신앙적인 요소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관계 때문에 자녀 청빙이 강요되거나 세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거짓 선지자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이 거짓 선지자의 문제점 중 하나는 그의 악한 행동이 다른 사람을 악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당하게 자녀를 청빙한 교회라면 본질적인 악행이 아니므로 이런 거짓 선지자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교회가 담임목사의 자녀를 후임으로 청빙했기 때문에 다른 교회가 비슷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기화로 세습을 하는 교회가 더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김인수 박사도 지적했지만 사실 우리의 현실은 그럴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러므로 의도적인 악행은 아니어도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오도하게 되는 자녀 청빙은 또 다른 의미에서 거짓 선지자의 행위가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5. 세습이나 자녀 청빙과 유사한 문제점
 
우리는 지금까지 세습이나 자녀 청빙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지만 한국교회에는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더 있다. 그것은 세습이나 자녀 청빙과 같은 원리로 자행되는 부당한 행위이다. 즉, 하나님의 뜻이나 교회법을 공정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줄에 따라 청빙을 결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변칙적인 세습도 있고 혈연 외의 연줄에 따라 부당하게 결정하는 것도 있다. 이런 문제가 오늘의 논제에서 조금 벗어난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기본적으로 인간의 연고를 따르는 것이라는 점에서 세습 문제와 같은 것이다.
 
혈연 외에 부당하게 담임목사를 청빙하거나 교회 일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연줄로는 지연과 학연이 있다. 이것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분은 이것이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할지 모르나, 교회는 근본적으로 세상을 닮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마 5:13-16; 롬 12:1-2). 세상이 그렇다고 교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혈연만이 아니라 지연이나 학연에 의한 부당한 청빙이나 결의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에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 맺는 말
 
최근에 한국교회는 뜻하지 않게 세습이라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대두된 것은 단순히 몇몇 교회에서 세습이나 자녀 청빙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그만큼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한국교회는 이 기회에 올바르고 성숙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함으로써 이 어려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세습 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지만 한쪽에서는 세습(부당한 대물림)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세습이 아니라 자녀 청빙(정당한 대물림)이라고 하기 때문에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습과 자녀 청빙을 구별하여 살펴보았다.
 
먼저, 세습은 인간의 혈연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는 일이고 불공평한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 변칙 세습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세습이나 변칙 세습을 옳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을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이다. 세습은 정말 한국교회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세습과 유사한 변칙 세습이나 다른 연줄을 통한 부당한 청빙도 사라져야 한다.
 
아울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정당하게 청빙한 경우라 하더라도 담임목사의 자녀 청빙은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교회와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합법적이고 또한 앞으로 언젠가는 한국교회에 정착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안 된다. 한국의 절대 다수 사람들이 그것을 자녀 청빙으로 보지 않고 세습으로 보아 교회에 덕이 되지 않고 선교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당한 자녀 청빙이 묵인되면 많은 교회가 진짜 세습을 강행할 위험이 크므로 한국교회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정당한 자녀 청빙이라 하더라도 지금 한국교회에서 자녀 청빙을 허락하는 것은 잘못 적용된 것이며 거짓 선지자의 교훈이 된다.
 
어떤 교회는 정당하게 자녀를 청빙한 것이 세습이라고 지탄을 받아 억울할 것이다. 또한 자녀를 청빙해야 교회에 더 유익하리라고 믿는다면 교회를 위해 안타까울 수도 있을 것이다. 특정한 교회의 사정을 다 모르는 제삼자가 그 교회의 결정을 비난하거나 다른 결정을 하도록 강요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정당한 자녀 청빙마저도 선교에 크게 방해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교회들이 "우리 교회가 희생해서라도 한국교회와 사회에 덕을 끼쳐야겠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주기를 바란다.
 
교회마다 특별한 사정이 있겠지만 한국 대형교회의 가장 특별한 사정은 담임목사의 자녀가 오면 목회가 잘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교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이며 그래서 산 위의 등불처럼 모든 사람 앞에 노출되어 있고 또한 사회로부터 그런 교회의 담임목사는 특권이 있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수 사정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는 더더욱 자녀 청빙을 피해야 한다. 사실, 이제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에도 수십 명의 목사들이 지원을 하는 상황이므로 어느 교회라도 자녀 청빙은 피해야 한다. 하물며 큰 교회라면 얼마나 더 피해야 하겠는가!
 
다니엘이 지킨 음식 규정(단 1:8-16)이나 초대교회가 정한 네 금령(행 15:19-21) 등은 후대 교회에서는 없어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신앙생활에 크게 유익을 주는 중요한 규범이었다. 세습은 잘못이지만 자녀 청빙은 원칙적으로 잘못이 아니다. 다만 당분간 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피해야 할 일이다. 만일 현재 자녀 청빙으로 문제가 제기된 교회들이 자신의 행동이 틀려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한다는 의미에서 자녀 청빙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한 위대한 결단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 희생적 결단에 감사하며 박수를 보낼 것이고 한국교회는 이를 계기로 더욱 성숙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충분히 성숙하고 사회의 모범이 되어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 자녀를 청빙해도 그것을 세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큰 교회라 하더라도 담임목사직이 철저히 희생과 봉사와 사랑의 직책이라고 믿게 되면 자녀를 청빙해도 이권을 세습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충분히 교인들이 평등하고 공정하게 교회 일을 할 수 있다고 인정을 받으면 자녀 청빙을 담임목사의 권세에 의해 부당하게 결정된 것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교회는 어느 정도 이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는 지금 다른 것을 희생해서라도 바로 이런 교회의 참 모습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세습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어 마음껏 담임목사를 청빙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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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 발표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써 논찬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혈연이 작용한 담임목사직 세습을 옳게 보는 분은 없는 것으로 보아 그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1. 오늘 우리의 토의가 영원한 원리가 아니라 일시적인 규범이라 하더라도 현재 한국교회의 현실에 가장 적합한 답을 찾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가?

2. 담임목사의 자녀가 후임목사가 되는 경우 중 혈연의 특혜를 전혀 받지 않고 정당한 절차를 거친 최선의 선택에 의해 청빙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리라고 보는가?

3. 대체적으로 한국의 대형교회 담임목사직이 세속적인 명예와 부귀가 있는 직분이라고 보는가 아니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고난과 희생의 직분이라고 보는가?

4. 일부 교회들이 정당하게 자녀를 청빙하면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그에 공감할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부당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는가?

5. 정당한 자녀 청빙이 특정교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과 한국교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크리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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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응답 중 본 논찬자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혹시 질문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구두소통 중에 생긴 실수로 보고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질문 1 세상 사람들이 세습을 싫어하기 때문에 세습을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과 세상 중에 세상을 따르는 것과 같지 않은가?
 
답변: 하나님과 세상 중 어느 쪽을 따르는가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뜻이 상반될 때 생각해야할 문제이다. 세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세습 반대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자녀 청빙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 아닌데 세상이 싫어하므로 안 된다고 했다. 이것은 피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을 따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자녀 청빙을 반대하는 것은 세상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이다. 자녀 청빙은 꼭 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자녀 청빙을 피하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절제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자세가 옳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10:23-24과 9:19-23이 잘 보여준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린도전서 10:23-24)
 
고린도전서 9:19-23은 바울이 한 사람이라도 더 선교하기 위해 이 사람에게는 이 모양으로 저 사람에게는 저 모양으로 되어 선교한 것을 보여주는 본문이다.

 
질문 2 세습 반대의 성경적 근거를 말해달라.
 
답변: 논찬 때에는 시간관계로 이 원고의 많은 부분을 읽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원고를 보면 어느 정도 답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단, 담임목사의 자녀가 후임목사가 되면 안 된다는 문자적인 표현은 성경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비추어 자녀 청빙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해도 안 되고 남들로부터 비방받을 일을 해도 안 된다고 한다.(롬 14:13-16; 마 5:13-16). 그런데 자녀 청빙은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고 비방을 받을 일이다. 그래서 자녀 청빙은 선교에 방해가 된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선교하라는 성경 말씀(마 28:19-20; 고전 9:19-23; 딤후 4:2)에 비춰볼 때 자녀 청빙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질문 3 가족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지 가족을 배척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담임목사는 가족을 배척해야 한다고 하는가? 우리가 개척을 할 때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다면 아들 목사가 아버지 목사의 도움을 받아 개척하는 것이 왜 나쁜가?(이 질문은 본 논찬자의 책 『교회주인은 사람이 아니다』에 나온 내용에 대한 질문으로서 변칙 세습에 대한 질문이다)
 
답변: 본 논찬자의 논지는 가족을 배척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특권을 배제하라는 것이다. 담임목사라고 아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특혜를 주며 불공평하게 청빙이나 교회 일을 결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 개척도 마찬가지이다. 특권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개척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아들의 개척을 도우려면 개인 돈으로 도와야 한다. 일단 교회의 공금으로 개척을 도우려면 가장 공정하게 교회의 의논과 결의를 거쳐 도울 교회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할 교회나 목사를 선정할 때 정보의 한계가 있어서 부득이 잘 아는 목사를 지원하기로 했다면 어쩔 수 없겠으나 인간적인 친분 때문에 교회의 공적인 일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담임목사나 교회 중직자의 인척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공평무사하게 교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질문 4 혈연에 관심이 많은 것은 미풍양속 아닌가? 왜 혈연을 중시하는 것을 악하다고 하는가?
 
답변: 물론 혈연을 중시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최선을 다해 혈연을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 본 논찬자가 말하는 것은 공사를 구별하여 공적인 일은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의관인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기에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병역을 면제시키는 것이 혈연을 중시하는 미풍양속인가? 질문 3에 대한 대답과도 비슷하지만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자녀에게 특권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질문 5 성경에서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직분을 이양하거나 일을 시키지 않았는가? 모세도 여호수아에게 인계했다. 왜 가깝고 잘 아는 자녀에게 직분을 넘기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가?
 
답변: 여호수아는 모세의 동역자이지 아들이 아니다. 다른 예로 디모데도 바울의 동역자이지 아들이 아니다. 담임목사가 동역자에게 직분을 넘기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자녀에게 직분을 넘기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자녀가 아니라 부교역자에게 넘기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교역자를 잘 훈련시켜 정당하게 청빙하면 세습이라는 문제는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질문 6 세습이나 자녀 청빙을 찬성하는 사람은 다 거짓 선지자인가? 그렇게 남을 매도하는 논찬자의 태도야말로 전형적인 거짓 선지자의 모습이 아닌가?
 
답변: 특정인이나 특정한 입장의 사람들을 거짓 선지자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발표과정에 그런 뉘앙스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 대해서는 유감으로 생각한다. 본 논찬자의 의도는 잘못된 자세를 밝히려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서는 거짓 선지자의 유형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이용하였다. 하지만 발표 내용은 맞는 것으로 확신한다. 본 논찬자는 세습이나 자녀 청빙을 찬성하는 사람이 지금 한국교회 상황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적용한 것으로 보지 않으며 거짓 선지자일 위험이 크다고 본다. 그리고 자기는 맞고 남은 틀린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 선지자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것은 참 선지자들도 보여준 모습이다. 아모스(암 7:10-17)나 예레미야(렘 20:1-6)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다(갈 1:6-9). 심지어 예수님도 자신이 맞고 바리새인들은 틀렸다고 하셨다. 전하는 말씀의 내용이나 적용이 잘못될 경우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이지 남이 틀렸다고 말한다고 해서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질문 7 대형교회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대형교회는 희생되어야 하는가?
 
답변: 본 논찬자가 대형교회의 희생에 대해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형교회가 망해도 좋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다. 그 말은 대형교회 교인들이 이미 교회에서 결의한 것을 바꾸고 다시 청빙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희생이고, 자기들이 최선의 목사라고 믿는 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희생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교회에 해가 되는 희생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차피 담임목사의 자녀가 후임이 되면 대형교회가 잘 되고 다른 사람이 후임이 되면 쇠퇴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대형교회의 희생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희생이고 또한 위험을 각오하는 희생이지 망하는 희생은 아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날 발표된 내용 중에 우리가 꼭 되새겨봐야 할 내용이 있어 간략히 덧붙인다. 그것은 세습이나 자녀 청빙과 관련하여 사도행전 5:33-42에 나오는 가말리엘의 행동을 우리의 중요한 모범으로 보자는 내용이다. 거기서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는 공회원들에게 이런 요지의 말을 한다. "이 사람들을 내버려두라. 이 사람들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내버려두어도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이 사람들을 무너뜨릴 수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다."
 
가말리엘의 이 행동은 우리에게 모범이 될 수 없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그가 한 말이 이론적으로 옳고 그의 행동이 사도들에 대한 박해를 줄여 교회에 유익을 끼쳤지만 그 자신은 아무 결단도 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을 것인가 배척할 것인가를 결단하는 것이다. 예수가 메시야이면 믿어야 하고, 만일 가짜 메시야라면 배척해야 한다. 그의 행동으로 그는 결국 어떻게 되는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잘못된 결단이지만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박해한 바울이 오히려 나중에 회심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다. 가말리엘의 행동은 미지근한 행동으로서 결코 신자의 모범이 아니다.
 
다음으로 가말리엘의 태도는 사도들의 행동을 묵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되었지만 만일 악한 사람의 행동도 같은 자세로 묵인한다면 그 결과는 하나님 나라에 큰 해가 될 것이다. 그것은 군사독재자가 나타났을 때 그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처리될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이와 같이 교회의 세습이나 자녀 청빙의 문제를 가말리엘처럼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결단해야 할 것을 미루는 미지근한 자세로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세습이나 자녀 청빙을 묵인하고 찬성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세습이나 자녀 청빙이 지금 한국교회에 부적합한 일일 경우 가말리엘처럼 행동하는 것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큰 해를 끼치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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