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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되는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담임목사직 세습을 바라보는 시각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과)

 

문제의 제기

세기가 바뀌면서 한국교회는 목회 세습을 통해 또 한 번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북한 정권의 부자 세습과 재벌기업들의 세습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무르익던 상황에서 담임목사직의 세습(속칭 대물림’)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에 반응은 생각보다 컸다. 한국교회가 과연 자정 능력이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는 담임목사직 세습 반대운동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일각에서는 교회 문제를 사회에 알린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전도를 가로막는 일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인들이든 교인이 아니든 세습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그렇게 곱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때로는 뒤에서 세습 반대운동을 지원하고 때로는 앞에 나서야 할 처지에 있었다. 당시에 목회 세습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기독교 시민운동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약칭 기윤실)의 집행위원장 겸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윤실은 200063일 집행위원회와 건강교회운동본부 운영위원회의 연석회의를 통해 담임목사직 세습 반대운동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해 630일에는 일부 대형교회 담임목사지 세습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하고 목회 세습이 한국 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임을 교회와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기윤실의 성명서는 세 가지 요점을 담고 있다. 첫째, 기독교는 혈연의 종교가 아니라 언약의 종교이다. 따라서 혈연적 요인이 목회적 승계의 선택 기준이 될 수 없다. 만일 2세가 출중하다 해도 새로운 목회의 길을 겸손히 택함으로써 숱한 역정 속에서 말없이 종의 사역을 감당해 가거나 그 길을 준비하는 수많은 동역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 담임목사직 세습의 이면에는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물량주의와 잘못된 소유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목사도 신앙 공동체를 섬기는 하나님의 불완전한 종일 뿐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적으로 대변하는 신적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열어주신 만인제사장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장직 세습을 들어 담임목사직 세습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신 새 시대와 신약교회를 부정하고 기독교를 구약의 율법 종교로 되돌리는 것과 같다. 셋째, 재별 총수마저도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하는 오늘날, 혈연에 의지해서 교회의 평안을 추구하려는 것은 교회가 이미 깊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담임목사직 세습과 관련된 대형교회들은 인본주의적 현실을 직시하고 예수님을 명실상부한 교회의 머리로 모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성명서의 골자였다.

 

기윤실은 그 후 기도회와 포럼을 개최하고 각 교단 총회에 담임목사직 자녀 세습불가 총회결정 호소문을 발송하였다. 세습 반대 운동에 가장 크게 반응한 교회는 광림교회였다. 광림교회는 기윤실 건강교회운동본부에서 광림교회의 후임 담임목사로 결정된 김정석 목사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와 관련해서 기윤실 방문을 요청했고, 기윤실은 88일 광림교회에서 보낸 장로 일곱 분을 만나 그들의 입장을 전해 들었다. 95일에 기윤실과 복상포럼은 세습을 주제로 한 포럼을 열었다. 이날 모임에서 대형 교회 담임목사직 대물림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이만열 교수가 15분 정도 기조연설을 끝내자마자 광림교회 교인들이 일어나 방해하는 바람에 포럼 진행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1시간 반가량 논란을 벌인 끝에 결국 포럼을 포기하고 해산 선언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 광림교회는 기윤실 포럼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으로 유인물을 배부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한 문제제기는 기윤실이 처음 한 것은 아니다. 광림교회의 세습 문제에 한정해보더라도 최초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은 기윤실이 아닌 광림교회 교인들이다. 2000426일에 광림교회가 담임목사직을 김선도 목사의 아들 김정석 목사에게 승계하기로 결의한 사실이 알려지자 교인들 가운데 일부가 강하게 반발하였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이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교회 게시판을 폐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감리교 기관지인 기독교 타임스는 광림교회의 결정 직후 사설을 통해 이익을 목적으로 조직된 기업에서도 세습 제도는 자랑스런 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자랑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개탄하였다. 같은 해 616일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주최로 모임 개혁과 갱신포럼에서는 목회 세습을 문제 삼았고, 이날 발제를 맡았던 박종근 목사는 목회자 세습은 교회를 사적 소유의 개념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하였다. 감리교 측에서도 교회세습중지 서명운동본부가 구성되어 반대 성경을 받았고, 1019일 아현감리교회에서 연세대학교 김광식 교수와 감신대학교 이원규 교수의 발제로 교회 세습 문제를 고발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 밖에도 한국기독교학술원에서는 1026일에 목회 세습을 주제로 한 공개강연회와 토론회를 가졌고, 신촌포럼에서도 1116일에 신촌성결교회에서 담임목사, 은퇴 빛 선정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주제를 다루었다.

 

 

문제가 되었던 광림교회는 2001325일 담임목사직 승계를 공식적으로 끝냈다. 만일 기윤실이 광림교회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한다면 목회 세습 반대운동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윤실은 광림교회의 세습을 끝까지 막으려고 하지 않았고 또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기윤실이 겨냥한 것은 광림교회가 아니었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실행되고 있고, 크고 작은 교회들이 세습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표였다. 이 목표가 현재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 아직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아들이나 사위에게, 단지 아들이고 사위란 이유로 교회를 물려주는 일이 자동적으로 일어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대물림이 이제는 그렇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한국 교회들의 마음속에 어느 정도 새겨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목회 세습 반대운동이 시작되자 어떤 교회는 세습의 공식화를 미루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세습을 하는 데까지 오게 되었나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세습은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목사가 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교수도 될 수 있고 의사도 될 수 있고 목사도 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세습또는 대물림은 아버지가 담임목사로서 목회를 하던 교회를 아버지가 물러날 때 아들이 그 직책을 물려받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담임목사직 세습이다. 시골의 작은 교회에, 목회자로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어 자기 아들에게 목사직 대물림한 경우를 두고 누구도 세습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담임목사직 세습은 귀족화된 목사직을 아들이나 사위에게 물려주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한국 교회의 문제로 등장한 담임목사직 세습이 하루아침에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걸어온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가 세습이다. 한국 개신교 성장과 관련된 특성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현상을 좀 더 바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한국 개신교는 6·25전쟁과 1960년대 이후 개발경제를 거치며 급성장하였다. 전체적으로 교인 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대형교회가 출현하였다. 예컨대 한국 개신교회 대표적 교회 가운데 하나인 영락교회는 이북에서 내려오거나 6·25전쟁 당시 피난을 온 사람들이 모인 교회로, 강남의 대형교회가 생기기 전에는 한국 최대의 교회였다. 강남 교회들은 강남이 개발되면서 생겨났다. 6,70년대를 거치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강남에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이들이 강남의 몇몇 대형교회를 이루었다. 이 시기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 기복신앙적인 특성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전쟁의 참화와 정치적 불안, 그리고 60년대 이후 시작된 경제개발에 따른 부의 축적은 현세적 기복신앙의 발판이 되었다. 대형교회의 형성 배후에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목사의 설교와 구역을 중심으로 한 일사분란한 조직관리, 그리고 돈과 시간을 쏟은 평신도들의 헌신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대부분 죄에 대한 설교나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기보다는 위로와 축복의 설교를 했고, 우리의 욕구를 들어주며 채워주시는 하나님 상을 만들어갔다. 긍정적·적극적 사고를 외쳤으며 번영과 축복을 약속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남에 있는 교회들은 다른 지역 목사들보다 더 큰,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후임문제가 불거져 나온 대표적 경우가 영락교회였다. 한경직 목사가 은퇴한 이후 영락교회는 여러 목회자를 거쳐야할 정도로 지도력의 안정에 실패하였다. 경동교회도 이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강원용 목사가 은퇴한 뒤, 이 교회도 여러 차례 담임목사의 경질 과정을 거쳤다. 충현교회도 김창인 목사가 물러난 뒤 두 분의 목사가 이어서 담임목사가 되었지만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지금은 김 목사의 아들이 목사 수업을 받은 뒤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짐작컨대 이 과정을 지켜본 목사들은 아예 처음부터 아들에게 물려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바로 한국 교회의 큰 함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형교회의 후임자 문제가 그렇게 쉽지 않음은 인정한다. 그 큰 조직을 이끌어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 조직을 단순히 유지하는 것만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형교회를 이루는데 공을 세웠던 목사가 계속 영향력을 행세해야 한다는 생각이 물러나는 목사뿐만 아니라 교회 장로들이나 그 밖에 지도자들에게도 있을 수밖에 없다. 대형교회로 성장하면서 교회 장로들과 지도자들은 어느새 담임목사에게 길들어졌고, 그 길들임과 길들여짐을 목사나 장로들이 다 같이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러난 목사는 원로목사란 이름으로 교회에 전반적인 영향을 여전히 미칠 수 있기를, 교회 장로들은 여전히 그 영향력 아래 있기를 원한다. 원로목사와 불화가 있을 경우 새로 담임한 목사가 쫓겨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한국 교회의 많은 문제는 바로 이 원로목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조성된다는 추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교회는 목사가 처음부터 시작한 교회일수록 어느새 담임목사에 의해 사유화되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예산·행정·인사 등 모든 부분에서 담임목사는 거의 절대권을 행사하며 담임목사와 가까운 장로와 집사와 권사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그들의 명예와 영향력을 확장해가도록 구조화되었고, 다른 교회와의 공동체적 의식 없이 오직 내 교회’ ‘우리 교회를 내세우는 개 교회주의에 빠져버렸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담임목사직 세습은 담임목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사유화된 결과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는 수순이고 절차가 아닐 수 없다. 한국 교회 특유의 이런 배경에서 담임목사직 세습을 보아야 문제가 바로 보인다.

 

세습이 왜 문제인가

먼저 세습을 찬성하는 쪽의 주장을 요약해 보자.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는 200097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목회권을 아들에게 넘겨주는 일이 숱하게있지만 논란이 없다. 둘째, 외부인을 모시는 것은 교회로서는 리스크가 크다. 똑같은 신학을 해도 교회마다 영성의 차이가 있다. 심장이식을 해도 혈액이 맞아야 하고 피부조직이 맞아야 한다. 세습을 결정하게 된 배후에는 충현교회가 겪은 시행착오를 동일하게 밟지 않기 위한 마음이 있었다고 김 목사는 덧붙여 말한다. 충현교회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두 번이나 맡겼다가 뒤늦게 아들에게 신학을 시켜 후임으로 삼았기 때문에 혼란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원로목사들의 조언도 한 몫 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세습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아들이 후임을 맡아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C, L 등 개신교계의 원로목사님들이 세상의 비난에 얽매이지 말고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뭔지 잘 판단해 결정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교회 유지와 성장이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거론된다.

광림교회 기획담당 박동찬 목사는 20001026일 한국기독교학술원에서 주최한 공개 강연회에서 한국 교회의 세습문제에 대한 신학적 조명에 대한 논찬을 통해 광림교회의 부자 승계의 정당성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변호한다. 박 목사에 따르면 첫째, 목사는 교회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존재로, 평신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형교회와 달리 대형교회일수록 목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교회 성장에 있어서 목사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매우 크며, 대형교회일수록 목회자의 전문성은 강조될 수밖에 없다.”

 

둘째, 교회 성장과 관련해서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이 중요하다. 전임목사의 목회철학과 다른 목회철학이 올 경우 교회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여려 성장하는 대형교회에서 아들을 훈련시켜 담임자가 되게 하는 것은, 첫째, 목회의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안이 되기 때문이며, 둘째, 후임자의 시행착오와 적응의 시간을 줄이는 방안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 후임자의 자질과 인품이 전임자보다 탁월할 때에 교회는 더 성장할 수 있다. 전임자가 워낙 탁월하여 대형교회를 이룬 경우 후임자의 탁월성은 전임자의 빛에 가려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첫째, 전임자의 협력과 지원이며, 둘째, 후임자의 적응능력, 그리고 셋째로 그 교회의 상황에 적합한 미래 목회의 비전이라고 전제한 다음 박 목사는 이렇게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아들은 후임자로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교회에서 부목사로 오랜 기간 목회를 하였다면 더욱 많은 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그 교회의 특성과 분위기를 알고 또 많은 교인들과 관계를 형성화였기 때문에 교인들도 담임자가 교체된 이후에 받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신임목사의 새로운 목회 방침을 쉽게 이해하고 따르게 된다.” 박동찬 목사의 주장에도 김선도 목사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유지와 성장이 모든 것을 보는 가장 중요한 틀로 작용한다.

 

그러면 세습이 왜 문제인가? 세습이 문제되는 것은 첫째,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바처럼, ‘사유화의 문제 때문이다. 물론 교회는 법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완전한 사유화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세습이 된다면 은퇴하는 원로 목사와 그를 따르는 지도자들, 그리고 원로목사의 뒤를 이은 아들 목사가 교회의 중요한 정책 결정과 집행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미래의 가능성보다 더 심각한 것은 담임목사직은 아들에게 승계하고자 하는 발상 자체가 교회를 자신의 것으로 보는 생각이 물러나는 목사에게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애써 개척했거나 키운 교회를 은퇴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보다 자식이나 사위에게 넘기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역시 인간적인 욕심이 개입한 생각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은퇴하는 원로목사가 지금까지 누리던 영향력과 재량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아들이나 사위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세습의 근본 이유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유지와 성장은 사실상 여기서 부차적일 것이다. 김선도 목사의 심장이식론도 후임 목사와 교회 간의 동질성보다 오히려 자신과의 동질성이 더 고려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세습이 문제되는 두 번째 이유는 은퇴하는 목사의 아들이 아닌 사람은 아무리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다 해도 원천적으로 후임 후보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능력보다 혈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불공정한 게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임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를 말씀과 기도, 설교와 상담으로 섬길 담임목사는 가능한 후보들 가운데 공정한 절차에 따라 선출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점에서 목회는 여타 가업(家業)과는 구별된다.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가게나 점포는 자녀가 능력이 있다면 대물림해줄 수 있다. 특수한 기능이 있을 때 그것을 자녀에게 가르쳐 대를 이어가도록 일터를 물려줄 수 있다. 그러나 교회 담임목사직은 가업처럼 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교회를 일구는 데 은퇴 하는 목사의 공이 지대하다 해도 교회가 그처럼 성장하는 데는 수많은 교인들의 시간과 재물, 열심히 투입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룬 가게를 넘겨주듯 자식에게 넘겨줄 수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회를 마치 개인 재산처럼 보기 때문이다.

 

셋째, 후임 목회자를 결정할 때 교인 전체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도 세습과 관련된 문제이다. 중요한 점은 후임 선정과 관련해 공론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청빙위원회가 구성되고, 가능한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고, 교인들에게 알리고 후보에 관해서 소상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후임목사가 될 사람의 설교와 강의를 들어보고, 교제해보고, 가능하다면 그의 성격과 삶의 방식을 어느 정도라도 알 수 있는 기회가 교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여론이 형성되면 장로교 제도에 따라 공동의회를 거치거나 감리교면 감리교 제도에 따라 구역인사위원회를 거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은퇴하는 목사의 아들도 목사라면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인들의 친숙도나 지명도는 전임목사 아들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정말 좋은 아들이라면 유리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불리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조차 은퇴하는 목사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한국 현실에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들 청빙을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역사를 거스르는 관행

나는 한국 기독교가 사회 속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세습을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세습 중단이 선도적 역할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필요조건은 될 수 있다. 세습은 한국 교회를 뿌리에서부터 흔들고 있는 개교회주의, 교직자의 권위주의, 교회 성장주의, 목사의 귀족화 등이 빚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세습이 당연시 되는 한, 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부르짖을 수 없고, 민주적 의식과 삶을 선한 가치고 내세울 수 없고, 화해와 일치를 주장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는 봉건제를 유지하는 데도 기여하였고 민주주의를 신장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근대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는, 이 가운데서도 특히 개신교는, 민주주의 신장에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전통을 이어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누구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기독교는 우리에게 가르쳤다. 신문과 잡지를 만들어 배포했고 민주적인 토론 문화를 가르쳐주었다. 담임목사직 세습은 기독교의 이러한 민주적 전통을 역행해서 봉건시대로서의 회귀를 알리는 매우 코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사가 되고 그 직임을 수행하는 것이 고난스럽고 어려울 때는 세습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목사가 이제는 대우 받고 존경받을 뿐 아니라 세속적 기준으로 보더라도 부와 명예와 영향력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세습이 큰 유혹이 되었다. 사회 전체는 혈연과 지연 등 연고를 떠나 능력과 자질을 우선하고 민주적 결정과정을 존중하는 관행이 형성되고 있는데, 유독 교회만 세습을 한다는 것은 역사적 전통을 뒤집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회 세습은 우리가 함께 일구어가야 할 사회 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건전한 종교행위는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된다. 세습을 고집하는 것은 민주적이고, 정의롭고,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시 강조하자면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민주적이고 신사적이어야 하고,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사심을 버려야 하며, 선한 일, 선한 목적이라면 누구보다도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목사도 사람 아닌가? 자기가 맡았던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누구보다도 정을 두고 일해온 곳을 얼굴도 모르는 제3자에게 물려주고 싶은 목사도 드물 것이고, 낯선 사람을 담임목사로 모셔오고자 하는 교인들도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당연히 품을 만한 생각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거부감은 사람의 체질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담임목사는 자신이 일하던 곳을 물러나면 그 교회와는 완전히 관계를 끊어야 한다. 미국의 어떤 교단은 목사가 은퇴하면 아예 수백 마일 먼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국내에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한 분들이 계신다.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가혹한 일일 수 있지만 후임목사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담임목사의 청빙과 후임 결정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의사 결정은 합리적이고 투명하며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지 않고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고 개선하며 선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출처 :

강영안 저,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한길사:2012)에서 대물림되는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부분(219~233)을 대중 좌담회 기조강연문 참고자료로 저자와 출판사 허락 하에 공유

주최 :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일시 : 2013년 1월 8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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