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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신교 정신으로

 

 

양희송(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1.

90년대 중반 충현교회의 세습을 필두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개신교 내에 거세게 불어 닥친 세습 열풍은 10년 넘는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확산된 듯하다. 이제는 중대형 교회 담임목사의 은퇴와 청빙 문제를 당하면 제일 먼저 확인하게 되는 것이 아들이나 사위 중에 목사가 없는가를 보는 상황이 되었을 정도이다. 사회로부터도 재벌, 북한과 더불어 세습하는 대표적인 3부류로 비난 받는 처지에 놓였다.

 

이 문제에 대한 즉각적 비판 이전에, '교회 세습'은 지난 30년간 한국 개신교가 교회성장의 정점을 넘어서고 맞이하게 된 리더십 교체 문제에서 실패하고 있음을 현상적으로 드러내는 징후로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그런 세습을 시도하는 이들에 대한 개인적 비난이 불가피하겠으나, 단순한 개인윤리를 넘어선 구조적 사안이란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교단신학교는 수요공급과 상관없이 신학생 수를 늘려와서 수급에 실패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고, 목회자는 이미 과잉배출 되어서(230개 교단, 14만 목회자, 78,000 교회) 2011년 말 2만개로 추산되는 편의점보다 더 과밀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 개신교가 겪는 개척교회의 위기는 한국사회 자영업의 위기와 겹치고, 부교역자 처우문제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신학생들은 청년실업과 고스란히 오버랩된다. 세습이 단지 초대형 교회만 아니라, 중소교회까지 편만하게 확산되는 이유는 사실상 직업적 생존 위기 문제와 직결되는 지점이 있다. 당위론적 비판이 당사자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2.

나는 최근 졸저 [다시, 프로테스탄트](복있는사람, 2012)에서 한국 개신교의 내부적 문제를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로 꼽았는데, 이는 곧 종교개혁의 원리와 역사적 교훈에 대한 일탈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중 '성직주의''성장주의' 두 가지가 공모한 현상의 대표적 사례가 '교회 세습'이다. 지난 30년간 우리의 교회론은 '교회 성장' 혹은 '교회 부흥' 외에는 없었다. 교회는 성장하는 것으로 그 존재증명을 하는 것이라 보았다. 교회의 건강성이나, 균형을 측정할 다른 지표는 성도들 가운데 부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성장을 일군 목회자는 '특별한 존재'로 추앙을 받았다. '큰 교회'를 일군 목사는 '큰 목사'라 불리었다. 거대한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함께 하심을 입증하는 간증이었다.

 

대다수 한국 개신교회는 공룡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공룡이 되어서 생긴 문제와 공룡이 되지 못해서 생긴 문제, 둘로 나뉠 뿐이다. 크기가 작아도, 그 열망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동일한 패러다임 아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종종 작은 교회의 분쟁 양상이 대형교회의 병폐 못지 않은 경우는, 교회론에서의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문제의 크기는 다를지언정 문제의 본질은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성장론적 패러다임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은 그러나 개교회 차원에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보인다. 구조의 문제를 개별적 노력으로 극복하자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상기하게 된다. 나는 '공룡이 되고자 하는 열망''생태계를 만들자는 열정'으로 전환되어야만 제대로 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신교 생태계'는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되겠지만, 적어도 크고 작은 교회들의 상호의존적 관계망이 형성되어 얻을 수 있는 '교회 생태계',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 확보를 위한 '지식 생태계', 그리고 개신교의 자원이 한국사회와 풀뿌리에서 얽히고 만나는 '시민생태계'로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교회 세습'에 대한 원칙 있는 비판과 긴급한 저지에 힘을 모아야 하는 한편으로, 구조적 대안을 마련하려는 멀고도 긴 노력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절감한다.

 

3.

'교회 세습'이 현재의 개신교 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향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는데, 이는 교계나 개교회에 존재하는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시키고, 견제와 균형의 장치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고질적인 악영향을 남긴다는 점이다. 세습을 자행하는 이들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당회나 공동의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권위주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교계 언론들이 일제히 침묵하는 행위, 혹은 이에서 더 나아가 반대 여론을 악마화하고 비난하거나, 세습을 공공연히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궤변을 전면적으로 내어놓는 등의 행위는 자기폐쇄적 속성을 강화하고 있다. 제도와 구조에 대한 불신과 무력감을 조장하고, 모든 절차적 정당성은 간단히 우회하는 방식이 개신교권에 내면화 되고 있다는 점이야 말로 장기적으로 개신교를 타락시키는 핵심적 요인이 될 것이다.

 

종교개혁이 중세시대를 종료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거대한 전환에 주요한 동력을 제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그 역방향의 사건, '근대를 닫고, 중세를 여는'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그것도 '개신교'의 깃발 아래서. (물론, 이는 한국사회 전반의 처지와 동떨어진 상황은 아니다.) 나는 개신교의 퇴락 양상 가운데에서 '교회 세습'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뚜렷하게 현재 개신교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노출시키고 있는 사건이라 생각한다. 이를 잘 해결한다면, 한국사회의 개선에 개신교가 기여할 여지가 조금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한국사회의 가장 퇴행적 양상의 하나로 간주되어 '존재하되, 인정받지 못하는' 매우 괴로운 방식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 우려한다. 이것은 우리의 '말의 값'을 떨어뜨리고, '행동의 동기'를 늘 의심 당하는 처지에 몰아놓을 것이다.

 

처방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우선 대증요법으로는,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매우 깊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세습'은 결코 원래 의도한 결과를 낳지 못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계의 다양한 층위에서 순차적으로 지속적인 대책들이 나와야 할 필요가 있다. 감리교의 경우에서 보듯, 교단 차원에서 법을 제정하는 노력이 확산될 필요가 있고, 여론의 감시기능이 약화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겠다. 좀더 장기적인 처방으로는 개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이 쉽게 왜곡되거나, 기만 당하지 않도록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개별 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런 '세습' 시도들이 좌절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만큼, 성도들의 인식과 교회정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이런 방향에 동의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네트워크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언론과 기독운동 단체들의 역할이 크게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개신교의 자식들이 가장 반 개신교적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모색할 대안은 개신교 원리를 회복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봉건적 중세 시대에 반대하며 등장한 개신교 원리에 내재된 '근대적 민주주의' 원리는 우리의 신앙이 사회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발현되는 토양을 다루는 것이다. '교회 세습'이란 매우 봉건적 양상을 만나면서 퇴행하는 개신교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인다. 우리의 대안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개신교 정신의 도래를 꿈꾸어 본다.

 

 

출처 : 대중 좌담회 '교회세습, 무엇이 문제인가' 발제문
주최 :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일시 : 2013년 1월 8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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