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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세습, 낡은 가죽부대

 

박득훈 목사(새맘교회)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9:14-17). 낡은 가죽부대는 탄력성이 사라져 새 포도주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이 몸으로 선포하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가죽부대란 새 포도주를 담아내는 신앙공동체 자체와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전통, 구조 그리고 행동양식을 의미합니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가죽부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가죽부대는 포도주와 세상이 만나는 접촉점입니다. 가죽부대의 모습은 포도주의 성질과 세상의 압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인간문화와 접촉할 때 결과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항상 새로운 포도주입니다. 그러므로 가죽부대는 새로운 포도주를 만나면서 늘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낡은 가죽부대로 전락해 버립니다. 결국 낡은 가죽부대는 찢어지고 새 포도주는 쏟아져버립니다.

 

한국교회 내에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은 대표적인 낡은 가죽부대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한국인의 토양과 만나면서 잘못 형성된 한국교회의 독특한 구조적 모습입니다. 그 낡은 구조 때문에 결국 한국교회는 스스로 망가지고 있고, 예수님과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그 구조 안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슬픈 것은 한국교회의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그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교회는 집단적으로 안톤의 실명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시력을 잃고도 자신이 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증세를 말합니다.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우기는 바리새인 증세라 할 수 있습니다(9:41). 하여 저는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마음으로 교회세습이 어떤 점에서 낡은 가죽부대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맺음말에서 새 가죽부대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교회 머리되심에 대한 위협

첫째, 교회세습은 예수님의 교회 머리되심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교회는 이 사실을 안 받아들일 뿐 아니라 오히려 역공을 합니다. 한기총은 작년 7월에 한국교회세습을 후임담임목사 청빙이라고 옹호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주요논지는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은 아버지 목사 개인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요 교회 공동체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선 재산과 신분을 물려받는 세습이 발생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시골의 쓰러져 가는 교회 세습은 용인하고 대형교회 세습은 비난한다면 이야말로 세속적, 비성경적, 인본주의적 사고의 반증이라며 맹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런 논리를 흔히 관념주의적 오류라고 말합니다. 관념적 진리를 실제와 혼돈함으로써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못 인식하는 오류입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신학적 원리이자 진리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천되기 전 까지는 관념의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교회의 경우 그 신학적 원리와 진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권위주의적 담임목회자가 교회에 속한 것의 대부분을 자신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하고 교인들은 이에 순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교회 안에서 가능한 것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기 전 까진 목회자나 교인이나 죄와 유혹 가운데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원리를 운운하면서 그 원리에 따라 교회가 운영되고 있다고 우긴다면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안톤의 실명 증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세습은 특정 교회의 실질적인 모습에 따라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신학적 원리에 따라 일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시골의 쓰러져가는 교회와 초대형 교회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시골의 다 쓰러져 가는 교회엔 아들이 물려받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세습의 가능성은 전무하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난의 여지보다는 오히려 칭찬과 격려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중대형교회의 경우는 세습이 가능합니다. 목회자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재산과 지위 그리고 권력 등 다양한 특권이 실질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대형교회의 경우 중요한 것은 특정교회가 신학적 원리에 따라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의 경우 그렇지 못한 교회가 대다수라는 점입니다. 특히 초대형교회의 경우 담임목사가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교회재정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은 이미 그 동안의 수많은 언론보도와 법정판단으로 드러난 사실입니다. 한기총의 심각한 오류는 이런 실제를 외면한 채 신학적 원리를 들고 나와 세습을 일괄적으로 정당화한다는데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신학적 원리를 무기 삼아 한국교회의 진실을 파악하는 뼈아픈 노력을 공격합니다. 이는 한기총이 실질적인 면에서 예수님께서 한국교회의 머리되심을 실현해 가는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교회세습은 낡은 가죽부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세습을 원론에만 의존해서 정당화하려는 교회는 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 교회는 결국 낡은 가죽부대처럼 터질 것이고 예수님은 그런 교회에서 거처를 마련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언약공동체로서의 교회 정체성에 대한 위협

둘째, 교회세습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언약공동체로서의 교회정체성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혈연관계를 중요시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순종해 받들었고, 청년시절 아버지와 함께 목수로서 충실하게 일했습니다. 공생애를 십자가에서 마감하시면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복음 선포를 통해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는 육신적 혈통을 이어가는 혈연공동체가 아니라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언약공동체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3:31-35). 이것은 구약의 언약 공동체를 완성시키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언약을 맺은 궁극적인 뜻은 이스라엘 민족을 뛰어 넘어 전 지구적인 언약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셨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8:10-12).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진정한 정체성입니다.

 

교회세습은 이러한 언약공동체로서의 교회 정체성을 위협하는 처사입니다. 한기총은 앞서 언급한 성명서에서 신학적 원리를 그렇게 강조하더니 결국 엉뚱한 신학적 오류를 드러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전통을 언급하며 교회세습이 바로 그런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미화합니다. 이는 교회의 혈연을 초월하는 언약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폄하 내지 사실 상 부정하는 처사입니다. 그런가하면 김홍도 목사는 작년 91일자 모 일간지 설교 광고를 통해 목사도 육정을 갖고 있는 지라아들이 자신을 이어 담임목사가 되면 시기심을 극복할 수 있고 교회가 편해진다고 말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해는 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언약공동체로 세워가야 할 목회자가 공적으로 취할 수 있는 처신이 아닙니다. 그런 목회자가 어떻게 성도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언약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시기심을 극복하고, 혈연을 뛰어넘어 언약공동체를 사랑하라고 권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세습을 이런 식으로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교회는 낡은 가죽부대입니다. 혈연을 뛰어넘는 예수님을 교회 중심에 모실 수가 없습니다.

 

맘몬숭배의 강화

마지막으로 교회세습은 예수님이 그토록 경계하신 맘몬숭배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돈과 재물을 일컬어 맘몬이라고 규정하신 것은 그것이 단지 물질이 아니라 경쟁신이요 하나님의 대항마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맘몬에게는 하나님에 맞서 강력하게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중대형 교회세습을 경계하는 이유는 교회세습이 그러한 맘몬의 영향력을 더 강화시키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대형 교회 안에는 주관적 인지여부를 떠나 부와 지위 그리고 권력이 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엄청난 헌금을 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돈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안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청결사건을 일으키신 것은 성전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강도의 소굴이요 장사하는 사람의 집으로 전락되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성전이 하나님이 아닌 돈의 힘에 장악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성령을 받은 신약교회라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재산에 대한 탐욕과 미련 때문에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기억하면 됩니. 다행히 사도 베드로가 엄중히 책망해 교회가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항상 그러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부와 지위 그리고 권력을 정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교회세습은 그것을 다루는 최악의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부와 권력과 지위가 실질적인 면에서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허용하면 그 힘은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속한 것이 다 하나님과 교회 전체의 것이라는 신학적 논리를 펼친다고 해도 그 실질적 주인은 아버지와 아들이 될 가능성이 극히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손에 쥐어진 부, 지위와 권력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 힘으로 부자(夫子)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그의 뜻을 거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적 성장 그 자체를 성령의 역사라고 말씀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흔히 외적 성장 자체가 성령충만의 증거라고 확신 있게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세습이든 교회재정 횡령이든 거의 절대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으로 등치됩니다. 이것은 성공이 옳은 것이라는 맘몬의 논리입니다. 이런 맘몬의 논리로 무장된 교회는 예언자적 목소리에 결코 귀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안톤의 실명 증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지 못하면서도 본다고 우기는 것은 그들이 사실상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누는 삶을 강조하며 맘몬숭배를 경계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었습니다(16:1-15).

 

교회세습을 맘몬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교회는 낡은 가죽부대입니다. 안식년법, 희년법 그리고 초대예루살렘 교회에서 실현된 재산통용의 교제로(2:43-47, 4:32-37) 이어지는 하나님나라의 가르침을 진정성 있게 수용할 수 없습니다. 중대형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목회자가 어떻게 교인들에게 재산을 통용하라고 진정성 있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대다수 한국교회가 맘몬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그토록 친화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낡은 가죽부대는 터질 것이고 예수님은 더 이상 그 안에 머물지 않으실 것입니다.

 

맺음말: 새 가죽부대를 향하여

한국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새 가죽부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건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진정한 주인으로 다스릴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함께 회개하고 예수님께 철저히 복종하는 예수님의 제자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좌지우지 하지 못하도록 민주적 교회운영구조를 새로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언약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담임목사직을 맡으면 불편하고 흔들리는 그런 교회는 진정한 언약공동체가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그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을 혈연을 떠나 존중하며 따르는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맘몬숭배를 철저히 배격하고 하나님께만 충성을 바치는 교회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맘몬의 논리들을 발견하고 통회 자복해야 합니다. 설교, 성경공부, 교회운영의 모든 분야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롭게 배워가야 합니다. 교회세습이 정당화되어가고 있는 이 슬픈 시간이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변혁의 기회로 해방될 수 있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출처 : 대중 좌담회 '교회세습, 무엇이 문제인가' 발제문
주최 :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일시 : 2013년 1월 8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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