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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습에 대한 신약학적 고찰

- 신약성서에서 바라본 한국 교회의 세습 문제 -

 

 

김판임 교수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신약학)

 

 

들어가며

 

1997년 충현교회에 이어 감리교의 세 형제들(김선도, 김홍도, 김국도)이 줄줄이 교회를 세습했다. 이들 교회 외에도 많은 대형교회들이 세습을 하고 있다. 교회 세습이 있을 때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은 논의하곤 했다. 그러다 지난 해 20126월에는 충현교회에서 아들에게 세습했던 김창인 목사가 15년 전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교회 세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논할 계기가 마련되었다.

 

세습이란 봉건주의 사회의 특징으로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봉건사회에서는 아들이 아버지가 하는 일을 이어가는 것을 가업을 잇는 훌륭한 행위로 인정하였다. 물론 가업을 잇는 책임을 맏아들에게만 있고, 다른 아들은 자유로웠다. 종교 영역에서 세습의 형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대제사장과 제사장, 레위인의 가문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에서 세습이란 부정적이다. 세습은 아들이라는 이유에서 아버지가 하던 일을 승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자격과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동일한 기회를 박탈하는 악한 결과를 낳는다.

 

가톨릭교회는 사제에게 결혼을 허가하지 않으므로 교회권력의 세습의 문제는 개신교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일이라 하겠다. 물론 충현교회 이전에도 개신교의 교회 세습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전의 교회 상황은 대개 열악하므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가업을 잇는 숭고한 결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부와 권력을 축적한 대형교회의 세습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세습을 한 교회의 신도들 중에는 아버지가 훌륭하시니, 아들은 당연히 훌륭하실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꼭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설혹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훌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라는 곳만 유독 비민주적이고 봉건주의적이어야 할까? 특히 재정 상태가 거대한 대형교회의 경우는 이런 비민주적인 세습은 권력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힘까지 세습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하다.

 

과연 성서는 교회 세습에 관해 어떤 판단을 내려줄까? 예수님은 한국 교회의 세습을 바라 보실 때 잘했다 칭찬하실까? 교회 개척에 열심이었던 바울은 현재 한국 교회의 세습 상황을 보고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진다.

 

신약성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현재 교회의 조직과 같은 것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목사라는 직책도 없었을 것이므로, 교회에 대한 기본 개념, “교회 지도자혹은 후임자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예수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신약성서에서 세습을 정당화할만한 내용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하며, 그렇지 않다면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교회 세습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과 교회 지도자 후임자 선정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신약성서의 교회와 교회 지도자

 

1) 예수의 교회와 지도자 이해

 

예수가 지상에서 공적인 활동을 시작하시며 외친 말씀은 때가 찾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는 것이었다. 하나님나라의 시작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 마가복음 117절에 의하면, 예수가 지상에서 활동하셨을 때 나를 따르라고 하며 제자를 부르셨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을 하셨으리라.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외에 여덟 명이나 더 부르셨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여러 치유와 귀신축출 등의 기적을 보이심으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보여주었다.

 

예수의 지상 활동은 개인의 탁월한 능력의 표출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운동이었다. 그 운동은 여럿이 하는 것이다. 운동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예수는 열 두 제자를 불러 둘씩 둘씩 묶어 보내며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알리라고 한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열두 제자를 보내 후에는 70인을 세워 다시 둘씩 보내어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알릴 것을 촉구한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나라 운동을 함께 도모하며 동고동락 하였지만, 우리는 그 운동을 교회라 부르지는 않는다. 현대 교회와 같은 조직도 찾아보기 어렵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기리는 단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승에 의하면,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 교회 구성원과 교회지도자가 가져야할 품격에 대한 윤곽을 찾아볼 수 있다. 마가복음 331-35절에 보면 유명한 일화와 함께 예수의 발언이 전해진다. 예수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토론할 때 그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찾아와 문밖에서 예수를 부른다. 이에 대한 예수의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10:33)고 반문하시며 그와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내 어머니이니라”(10:35)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한국 교회 세습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꼭 혈육관계에 있는 아들에게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옳으냐? 신앙 안에서 모든 이들이 형제 자매이고 아들 딸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교회 후임자 선정에 있어서 친자를 넘어서는 가능성의 폭을 열어주는 말씀이다.

 

또한 마가복음 1035-45절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기대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 전해진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의 제자들로서, 주님의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고자 한다. “주의 영광 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이다(10:37). 이에 대해 예수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그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10:40). 이어서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을 전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지도자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지도자라 하면, 우리는 타인보다 능력이 많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위치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예수의 사상에 의하면, 지도자는 타인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다.

 

교회의 시작은 예수의 지상 생활이 마감한 후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으로 맞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에 교회가 형성되었고, 그 교회의 우두머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으로 알려져 있다(1:18-2:10). 이들 중 야고보는 예수가 선택하여 불렀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아니다. 그는 이미 순교를 당했고,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로 알려져 있다. 마가복음 331-35절에 의하면,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은 예수 생전에 예수의 진가를 잘 알지 못했다고 보이는데, 예수 사후 어떻게 예수를 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 수장이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밝혀내기 어려운 내용이다. 또한 60년대에는 베드로도 순교를 당했는데, 그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로 어떤 사람들이 활동하였는지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베드로나 요한의 아들이 승계했다는 기록도 물론 없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의 세습 문제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2) 바울의 교회와 지도자 이해

 

바울이 편지를 작성하던 시기는 50-56년간이다. 이 시기는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후 20년 이상 지난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소식을 전하면서 복음이라 칭하였고, 바울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선교 활동을 활발히 하고, 교회를 개척하던 당시 바울은 교회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요즘 목사들처럼 정년 은퇴나 은퇴 후 교회로부터 생활비와 같은 연금을 받는 원로 목사 같은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일어날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그는 시간이 없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 위해 바울은 예수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곳에서 예수를 알릴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회에 머물지 않고 떠나 다른 곳에 전도한다. 한 지역에 머물러 제자를 양육한다거나 은퇴를 앞두고 후임자 선정에 고심을 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1) 교회 이해

 

바울의 교회이해는 바울이 사용한 용어를 중심으로 찾아볼 수 있다.

 

에클레시아

교회로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이다. 이 낱말은 신약성서에 114회 사용되고 있으며 바울서신에서는 44회 사용된다. 에클레시아는 “~부터란 의미의 에크(ek)부르다란 의미의 칼레오(kaleo)가 합성된 어휘로서 불러내어진 자들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진 자들이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고대 그리스나 헬레니즘 시대에 이 낱말은 투표권을 지닌 자유 시민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이란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초기 교회도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모였으므로 이 낱말을 교회 모임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도(호이 하기오이)

성도란 거룩한 자들이란 뜻이고, 거룩이란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구성원을 성도라고 부르곤 하였는데(15:25-26; 고전16:1; 고후8:4; 9:1, 12), 이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칭 타칭 부르던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와 함께 새로운 자의식, 즉 죄사함받고(깨끗하여지고), 거룩하여졌으며, 의롭다함을 받은 자라는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고전6:11 참조). 그들은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 살았고, 이 점은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그리스도의 몸(소마 크리스투)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라는 표현으로 교회를 말한다(고전 12:12-31). 특히 고린도교회는 교인들 간에 각자가 가진 은사들을 자랑하며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책으로 내 놓은 개념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고, 개개의 교회 구성원들은 한 몸의 지체들(, , , , 코 등)이다. 각 지체들이 기능을 하여 한 몸이 살아가듯이 교회도 개개의 구성원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함으로 살아가는 유기체로서, 드러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성령의 전(=성전)

세습하는 교회에서 선호하는 교회 이해가 성전으로서의 교회이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이미 무너졌고, 예수와 바울이 활동하고 교회가 태동하던 시기에 존재하던 성전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 다시 지은 성전이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인애라고 외쳤어도 유대교 제사장들은 성전제의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라고 여겼다.

 

바울이 성전 개념을 사용한 것은 교회 건물을 두고 한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 바울은 교인들로 하여금 음행을 피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하는 과정에서 선언한 말이다. “너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교회, 즉 성전은 교회 건물이 아니라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전을 위하는 목회자의 활동은 교인을 위한 봉사여야 하는 것이 옳고,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교인을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2) 교회 지도자 이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전12:28). 바울에 의하면 이 모든 직책들은 성령의 은사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교회 안의 직분은 은사에 의해 이루어지며, 모두 교회를 위해 중요하지 순위를 매길 수 없지만, 사도, 선지자, 교사가 보다 지위 높은 직책으로 평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 가장 먼저 언급된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하던 사람이다. 사도라는 직책은 복음을 전하며 다니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러므로 한 지역에 오래 머물러 사역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반해 선지자와 교사는 지역 공동체 출신으로서 오래 머물면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선지자란 구약성서의 예언자와 달리 교회 안에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덕을 세우며 권면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따라서 사도처럼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니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교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 공동체 멤버들을 잘 알고 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주어야 한다.

 

바울은 물론 이 모든 역할을 다 했지만, 자신의 자의식으로는 사도이다. 그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복음을 들고 이곳저곳 선교 여행을 다닌다.

 

(3) 동역자 이해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는 독불장군처럼 혼자 활동한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초기 선교활동은 바나바와 함께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는 바나바의 이름은 별로 언급된 적이 없다. 그러나 고린도에서 함께 활동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이름은 여러 번 언급되고, 그 외 바울서신 서두에 언급되는 발신인들도 바울의 동역자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중에 소스데네는 한 번(고전1:1), 실루아노는 두 번(살전1:1; 살후1:1), 그리고 디모데는 여러 번 언급된다(고후1:1; 1;1; 1:1; 살전1:1; 살후1:1; 1). 그리고 디모데는 빌립보서에서 바울자신과 동급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소개되고, 그 외의 서신에서는 형제라는 칭호로 소개된다. 이것으로 보아 바울의 활동에서 디모데는 특별히 오랫동안 가깝게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서신에서는 디모데가 바울과 공동발신인으로 기록된 반면, 목회서신(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에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있다. 이 서신에서는 디모데를 바울의 믿음 안에서 참아들”(딤전1;2), “사랑하는 아들”(딤후1:2), “나의 참아들”(4)로 언급된다. 이러한 표현은 한국 교회 세습 문제 해결을 위한 인사이트를 준다. , 세습하고 싶은 아들이 꼭 혈연관계의 아들이 아니라 믿음의 아들로 확대하면 좋을 것 같다. , 많은 교회의 경우 담임목사가 은퇴를 하거나 사임을 하는 경우 부목사들도 사임하게 하는데, 오히려 부목사 중에서 후임자를 구하는 것도 성경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바울처럼 복음을 들고 다니는, 소위 사도라 칭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는 바울에게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개척해 놓은 교회에 바울이 떠난 후에 와서 바울이 아니라 자기네들이 진짜 사도라면서 교회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자신들의 사도권을 행사하려던 사람들로 인해 바울은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고린도전서 9장과 고린도후서 10-12장에서 그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이 교회로부터 물질적인 것을 바라지 않았던 반면, 적대자들은 바라지 않는 것 자체가 그의 사도직이 의심스러운 것이라며 자신들이 교회로부터 바라는 것은 사도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갈라디아서 16-10절에 의하면 그들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까지 표현하고, 빌립보서 31-21절에서는 개들혹은 행악하는 자들이라는 심한 표현으로써 자신의 분개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갈라디아 교회나 빌립보 교회에 나타난 바울의 적대자들은 유대 출신으로서 믿음 외에 율법의 준수가 구원과 관련이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바울의 선교 활동을 무력화하려던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후임자 이해

 

한국 교회의 세습은 결국 후임자 선정의 문제이다. 세습을 승인하는 교인의 입장에서 나온 표현은 주로 이런 것이다. 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후임자가 되어 혼란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잘 알고 있는 아들이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이유처럼 들린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던 바울이 교회를 떠나면서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후임자로 선정하고 떠났다면 교회에 문제가 없었을까?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고 떠난 바울은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는다. 교회에 파당(분쟁)이 있다는 것이다(고전1:11). 교인들 말로는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고전1:12; 3:4)는 것인데, 이 문제는 결국 바울이 떠난 후 아볼로가 고린도교회에 들어와 지혜의 말을 가르침으로써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일이다. 개척자 바울을 좋아하는 사람과 후임자 아볼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바울 자신이나 아볼로나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고전3:9), 자신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는 것뿐이며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언급한다(고전3:6-7). 이로써 바울을 좋아하든 아볼로를 좋아하든 교회 안에서 하나될 것과 사람을 자랑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고전3:3, 21). 꼭 아들이 아니라 누구라도 후임자는 될 수 있는 것이며, 개인에 따라 능력이 다르고 교인들이 가지는 호감이 다를지라도 교회가 하나되도록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구절이다.

나오는 말

 

신약성서 안에서 교회 세습의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하다. 어느 한 구절도 교회 세습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혈육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예수의 말대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공동체이다. 바울의 표현대로 한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모든 믿는 자들을 형제자매로 부르는 성가족 공동체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에서 세습을 하는 분들은 아마도 유대교의 제사장(사제)과 개신교의 목사를 동일시함으로써 구약성서에서 성서적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구약성서 시대 유대교에서의 제사장 계급은 제사장 가문의 맏아들로 세습되었지만, 개신교의 목사라는 교회의 지도자는 신학이라는 학문을 배우고, 목사고시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가능한 것이다. 처음부터 선출방식이 다른 것이다.

 

성서적으로는 교회 세습의 근거를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교회가 세습을 자행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 보인다. , 공적인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나 교회 등이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세운 사립이라는 점에서 개인의 소유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재벌이나 일반 주식회사도 개인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창립자의 소유로 생각하는 문제가 있다. 목사가 개인의 재산을 털어 교회를 창립하고, 열심을 내어 부흥하게 되면, 타인에게 주기 아깝게 여겨지고, 가업이라 생각되어 남이 아니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113교회세습,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던 대중좌담회에서 강영안 교수가 지적한 내용이다. 이런 이유라면 대한기독교감리회에서는 교회세습방지법도 만들었지만, 세습을 방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김진호 목사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교회의 재정과 권력 문제로 원인을 분석했다. 그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초고속 성장을 이끌어온 대형교회의 경우 목사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재정 운용이 투명하지 않은 경향이 짙으며, 따라서 세습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임목사와 마찰이 생기기 때문에 세습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교회 세습을 막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목회자에게 집중된 권력을 이양할 수 있는 교회 결정의 민주화와 재정 운용의 투명화를 꼽았으며, 박득훈목사의 의견도 이에 일치하였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하여 다음과 같이 교회 세습을 방지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1) 한국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예루살렘 성전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2) 한국 교회는 목회자를 성전을 섬기는 구약의 제사장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3) 한국 교회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4) 한국 교회는 목사 자신이 사재를 털어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되도록 금지해야 한다.

5) 한국 교회 원로/은퇴 목사는 후임자가 될 목사들을 모두 주 안에서 얻은 아들로 인정해야 한다. 바울과 디모데 관계처럼.

 

6) 한국 교회는 보다 민주적인 운영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7) 한국 교회는 재정 운용을 투명화해야 한다.

 

 

 

출처 :학술 심포지엄 '교회세습, 신학으로 조명하다' 발제문
주최 :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일시 : 2013년 2월 19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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