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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습에 대한 역사신학적 고찰

- 한국 교회의 세습: 그 뒤틀린 역사 -

 

 

배덕만 교수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회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

 

 

글을 시작하며

 

논문을 준비하며, 국회도서관을 검색했다. “세습을 검색창에 입력하자, 네 가지 항목으로 자료들이 올라왔다. 북한의 부자세습, 재벌세습, 세습무당, 그리고 교회 세습. 물론, 네 종류의 세습 모두 부정적 함의를 담고 있다. 북한의 부자세습은 우리가 북한체제를 비난하는 가장 근본적 이유 중 하나다. 재벌세습은 이미 사회적 비난의 표적이 되었고, 재벌 안에서도 대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세습무당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꺼리는 직업중 하나다. 정말, “팔자 사나운 사람들에게 찾아온 무서운 운명이다. 교회 세습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교회 세습을 종교적 타락의 명백한 증상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교회 세습은 이미 한국 교회의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교회 안팎에서 날카로운 비판과 세속언론의 거친 공격에도, 대형교회들은 정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세습을 향해 무소처럼 돌진한다. 그 위세가 자못 무섭다.

 

한국 교회가 정상’(正常)이 아닌지 이미 오래되었다. 누가 정상인지, 어떤 것이 정상인지, 언제 정상이었는지 조차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정상적인 생각과 말이 비현실적·비효율적이란 반박 앞에 말문이 막히고, 비정상적 망상과 궤변이 현실적·효율적이란 명분 속에 판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세습 논쟁이 처한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분명히 그것은 잘못이라고 배우며 자랐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 자체가 근거 없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란 공격을 받게 되니, 그야말로 멘붕이다.

 

이 글은 지난 40년간 한국 교회에서 진행된 세습의 역사를 더듬어 보려는 목적 하에 준비되었다. 그동안 교회 세습에 대한 많은 글들이 발표되었지만, 세습실태를 교회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작업은 거의 없었다. 몇몇 신학자들이 세습의 부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교회사에서 몇 가지 사례들을 인용·분석한 경우들이 있었지만, 한국 교회의 상황을 본격적으로 다룬 교회사 논문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 글은 교회사적 관점에서, 지난 40년간 한국 교회에서 벌어진 교회 세습의 기록을 정리하고, 세습을 둘러싼 다양한 반대, 저항, 비판의 목소리들을 소개하며, 그런 현상들의 특징과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교회 세습의 역사를 세 시기(1973-1999, 2000-2011, 2012-2013)로 구분했다. 교회 세습 반대운동이 사회적 주목을 크게 받았던 해가 2000년과 2012년이었으므로, 그때를 중심으로 시기를 셋으로 나눈 것이다. 제동장치가 고장 난 열차처럼, 세습이란 파국을 향해 질주하는 한국 교회에게 이 소박한 글이 작은 경종이라도 울릴 수 있길, 그리고 세습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길 바란다.

1. 1973-1999

 

1) 세습과 반응

 

한국사회에서 교회 세습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그 해에, 충현교회가 교회개척자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를 제4대 담임목사로 결정했다. 그 결과, 교회 안팎에서 극심한 갈등이 발생했고, 교회 세습이 교회적·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충현교회가 한국 교회 최초의 세습교회가 아니다. 그 이전에도 주목할 만한 세습의 경우들이 있었다.

 

이미, 사회선교의 개척자적 역할을 담당했던 도림교회(통합)1973년에 유병관 목사 후임으로 아들 유의웅 목사를 청빙했다. 1980년대에는 두 교회, 부평교회(1980, 기감)와 길동교회(1986, 합동)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가 되었다. 이렇게 드물게 진행되던 교회 세습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1995년에 대구지역의 대표적 교회인 대구서문교회(합동)와 부천의 기둥교회(기감)가 은퇴하는 목사의 아들들을 후임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교회 세습은 한국 교회에서 예외적인 현상이었고, 세습으로 인한 교회의 갈등이나 사회적 비난은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아들들이 대를 이어 목회하는 동안, 교회들이 크게 성장함으로써, 후임자 선택과 승계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997년에 충현교회의 후임자 선정과정에서 심각한 분열과 갈등이 발생하면서, 교회 세습에 대한 대중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충현교회를 개척한 김창인 목사는 1987년에 은퇴했고, 이종윤, 신성종 같은 훌륭한 목회자들이 연이어 후임으로 사역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고, 마침내 1997년에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가 제4대 담임목사로 청빙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성관 목사의 자격시비, 김창인 목사의 과도한 개입, 청빙결정과정의 불법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김창인 목사와 김성관 목사의 관계가 악화되고, 1999년에 김성관 목사의 폭행사건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결국, 3만 명이 넘던 충현교회 신자 수는 5천 명으로 급감했고, 충현교회와 교회 세습에 대한 비난여론이 형성되었다.

 

충현교회 사태로 교회 세습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지만, 교회 세습은 계속 이어졌다. 1997년에 대표적 감리교회 중 하나인 주안교회(인천)에서 한상호 목사가 아버지 한경수 목사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로 부임했고, 1998년과 1999년에는 한국의 대표적 부흥사들인 신현균 목사(성민교회, 통합)와 오관석 목사(서울중앙침례교회, 기침)가 아들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 교회들은 은퇴목사의 아들들을 담임목사로 결정했지만, 충현교회 같은 심각한 내홍을 겪지 않았고, 사회적 비판도 거의 없었다.

 

순번

연도

교회

교단

위치

전임자/후임자

관계

목회

지위

기타

1

1973

도림교회

통합

서울

유병관/유의웅

아들

26

 

 

2

1980

부평교회

기감

인천

홍창준/홍은파

아들

 

 

 

3

1986

길동교회

합동

서울

박만식/박주완

아들

34

 

 

4

1995

대구서문교회

합동

대구

이성헌/이상민

아들

45

총회장

 

5

1995

기둥교회

기감

경기

고용봉/고신일

아들

19

 

 

6

1997

충현교회

합동

서울

김창인/김성관

아들

개척

총회장

 

7

1997

주안교회

기감

인천

한경수/한상호

아들

30

감독

 

8

1998

성민교회

통합

서울

신현균/신영준

아들

개척

 

아들사임

9

1999

서울중앙침례교회

기침

서울

오관석/오영택

아들

개척

 

,하늘비전교회

 

2) 세습의 특징

 

이 시기의 교회 세습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먼저, 1990년대 이전의 한국 교회에서 세습은 예외적 현상이었다. 1970년대에 한 교회, 80년대에는 두 교회 정도가 공적으로 알려질 정도로, 세습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둘째, 1990년대부터 한국 교회에 세습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995년부터 5년 동안 6개 교회가 세습을 완료했다. 이것은 앞의 경우와 비교할 때, 엄청난 속도로 세습이 증가한 것이다. 셋째, 아직까지 세습이 교회적·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 않았고, 세습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 충현교회를 제외하곤, 세습결정과정에서 불협화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충현교회와 성민교회 외에 다른 교회들은 세습 후, 교세가 크게 성장함으로써, 오히려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넷째, 이 시기의 교회 세습은 합동과 기감이 주도했다. 통합과 기침 소속 교회들도 있었지만, 앞의 두 교단과 비교할 때, 수가 적었고, 기성, 예성, 기장, 고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섯째, 지역적으로, 대구서문교회를 제외하고, 절대다수가 경인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섯째, 세습을 완료한 교회들은 대부분 대형교회들이며, 은퇴목사가 개척했거나 장기간 목회하면서 교회를 크게 성장시켰다. 일곱째, 은퇴목사들은 대부분 교단총회장이나 감독을 지냄으로써, 교단적 지위와 영향력도 대단했다.

 

3) 비판과 분석

 

이 시기의 세습에 대한 교회적·사회적 반응은 아직 명확한 형태를 취하지 못했다. 일차적으로, 은퇴목사들이 교회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교단적 차원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이런 결정을 문제 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후임목회자들 대부분이 외국유학 및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었고, 목회승계 이후에도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둠으로써, 개교회 안에서 아들에게 목회를 승계한 것에 큰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교회 세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마저 형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충현교회의 갈등과 분열을 기점으로, 서서히 교회 세습에 대한 위기의식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비판의 강도나 규모가 사회적 이목을 끌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시기에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예외적인 공적 비판은 기독교사상에 실린 장기천 목사(동대문감리교회)의 글이다. 그는 당시에 확산되던 교회 세습을 성직세습으로 명명하면서, 원론적 차원의 비판을 제기했지만, 유서 깊은 동대문교회의 담임목사요, 감리교회의 감독회장을 지낸 인물이 교회 세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그의 글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 후에 그런 지위의 목회자들 안에서 교회 세습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글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는 성직세습에 대해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지난 선교 1세기 동안에는 극히 드문 현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감쪽같이, 때로는 공공연하게 성직세습을 자랑하는 예식이 벌어지고 있다. 세속에 대한 어떤 이익이나 명예를 포기하고, 다만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데 온 삶을 헌신키로 한 성직자에게 이런 일들은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을 잃게 마련이다. 하느님 나라의 구현을 추구하는 교회로서는 모양새가 구겨졌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마저 정실이 판을 친다면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꼴이 된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에게나 있을 법한 못된 일인 줄 알았는데, 거룩하고 은혜로운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부끄럽고 두렵기조차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2000-2011

 

1) 세습과 반응

 

한국 교회의 20세기는 교회 세습을 둘러싼 뜨겁고 치열한 논쟁 속에서 저물었다. 8만 명의 신도수를 자랑하는 광림교회(기감)2001년에 은퇴하는 김선도 목사 후임으로 아들 김정석 목사를 청빙할 계획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계 전체가 홍역을 앓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안 것은 광림교회 신자들이었다. 즉각, 광림교회 안에서 반대목소리가 교회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기윤실, 복음과상황, 뉴스앤조이, 새벽이슬 같은 단체들이 20003월부터 기도회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광림교회 세습반대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여론에도, 광림교회가 세습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자(2000. 4. 30), 여러 곳에서 반대성명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2000612일에 감리교신학대학교 총동문회가, 2000630일에 기윤실이 반대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광림교회도 침묵하지 않았다. 언론과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반격을 가했다. 한기총(회장 이만신)719일에 성명서를 발표하여, 광림교회의 결정을 옹호했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되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회장 옥한흠)도 세습에 대한 (온건한) 비판적 성명서를 발표했고(2000. 9. 18), 이어서 감리교 교회세습 중지 서명운동본부가 발족되어, 서명운동과 세미나를 개최했다. 소수의 신학자들도 비판에 동참했다. 한국여성신학회는 한국 교회 세습 이대로 좋은가?” 를 특집으로 학회지를 발간했으며, 기독교사상12월호에 연세대 김광식 교수가 교회 세습에 관하여란 제목의 글을 발표하여, 교회 세습을 강력히 비판했다. 하지만 이렇게 광림교회 세습 문제로 한국 교회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을 때, 구로중앙교회(기감, 베다니교회)에서는 곽주환 목사가 아버지 곽전태 목사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광림교회도 2001325일에 세습을 완료했다.

 

이렇게 교회, 교단, 교계의 강력한 저지선을 광림교회가 정면 돌파한 후, 대형교회들은 경쟁적으로 세습에 몰두했다. 교계의 지도적 목사들이 침묵한 상태에서, 기독교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한기총을 중심으로 대형교회들이 공모한 상태에서, 소수 학자들의 비판은 무기력했다. 강남제일교회(기침, 2003), 경향교회(고려, 2004), 분당만나교회(기감, 2004), 경신교회(기감, 2005), 대성교회(합동, 2006), 동현교회(합동, 2006), 종암중앙교회(개혁, 2007), 숭의교회(기감, 2008), 금란교회(기감, 2008), 계산중앙교회(기감, 2008), 임마누엘교회(기감, 2009), 경서교회(합동, 2010), 대한교회(합동, 2011)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겨주었다. 심지어 대학생선교단체인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창립자 김준곤 목사의 사위 박성민 목사가 새 대표로 결정되었고(2002),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의 회장직도 조용기 목사의 아들들(조희준, 조민제)에게 세습되었다(2006, 2012). 세습의 영역이 교회담장을 넘어, 선교단체와 기업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큰 저항이나 분란 없이 세습이 완료되고, 성장한 교회들이 적지 않았다. 분당만나교회와 경향교회 등은 대표적 성공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후보자의 자격과 결정과정의 불법성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법정 소송에 휘말린 교회들도 여럿이다. 종암중앙교회와 강남제일교회가 대표적인 예로, 지금까지 분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교세도 급격히 약화되었다. 증가성결교회, 대흥침례교회, 경신감리교회 등은 무리한 세습시도가 교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무산된 경우들이다. 한편, 감리교를 대표하는 김선도, 김홍도, 김국도 형제는 모두 아들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웠고, 숭의교회는 3대째 세습에 성공했다. 모두가 신기록이다.

순번

연도

교회

교단

위치

전임자/후임자

관계

목회

지위

기타

1

2000

구로중앙교회

기감

서울

곽전태/곽주환

아들

개척

감독

, 베다니교회

2

2001

광림교회

기감

서울

김선도/김정석

아들

30

감독

 

3

2002

CCC

선단

 

김준곤/박성민

사위

개척

 

사위/선단

4

2003

소망교회

통합

서울

곽선희/곽요셉

아들

개척

 

변칙

5

2003

강남제일교회

기침

서울

지덕/지병윤

아들

개척

총회장

분쟁

6

2004

경향교회

고려

서울

석원태/석기현

아들

개척

총회장

 

7

2004

분당만나교회

기감

경기

김우영/김병삼

아들

개척

 

 

8

2005

경신교회

기감

서울

김용주/

아들

 

감독

분쟁

9

2006

대성교회

합동

서울

서기행/서성용

아들

39

총회장

 

10

2006

동현교회

합동

서울

예종탁/예성철

아들

37

총회장

 

11

2007

종암중앙교회

개혁

서울

조경대/조성환

아들

개척

총회장

분쟁

12

2008

숭의교회

기감

인천

이호문/이선목

아들

38

감독

3

13

2008

금란교회

기감

서울

김홍도/김정민

아들

37

감독

 

14

2008

계산중앙교회

기감

인천

최세웅/최신성

아들

39

감독

 

15

2009

임마누엘교회

기감

서울

김국도/김정국

아들

개척

감독

 

16

2010

경서교회

합동

경기

홍재철/홍성익

아들

개척

총회장

2014

17

2011

대한교회

합동

서울

김삼봉/윤영민

사위

개척

총회장

 

 

2) 특징

 

이 시기에 진행된 교회 세습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 세습이 매년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교회 세습은 더 이상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낯익은 일상이 되었다. 둘째, 세습 교회의 수가 증가하면서, 세습하는 교단의 범주도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합동과 기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셋째, 세습한 모든 교회가 서울, 인천, 부천 등 경인지역에 밀집되어 있었다. 넷째, 세습한 교회들 대부분은 대형교회이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교회들이다. 다섯째, 세습한 교회들은 원로목사들이 개척했거나, 30년 이상 목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섯째, 세습에 성공한 교회의 원로목사들은 대부분 각 교단 내에서 총회장과 감독을 지냈다. 심지어 한기총과 KNCC 대표회장을 지낸 사람들도 여러 명이 포함되었다. 일곱째,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목회자들은 교단적 배경과 상관없이, 대단히 보수적인 목회자들이었다. 여덟째, 세습의 범주, 대상, 방식에서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 선교단체, 사위세습, 변칙세습, 기업세습 등 새로운 방식의 세습이 등장한 것이다. 아홉째, 세습으로 인한 갈등과 폐해가 극심해졌다. 부당한 세습이 증가하면서, 교인들의 저항도 거세졌고, 그 결과, 극단적 분열과 고통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열 번째, 2000년 이후, 교단적·사회적 차원의 세습반대운동이 빠르게 약화되었다.

 

3) 비판과 분석

 

이 시기에 교회 세습에 대한 찬반진영의 주된 입장은 무엇이었나? 당시의 갈등구조 속에서 우리는 최소한 세 개의 상이한 입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세습을 추진했던 교회들과 이들의 영향 하에 있던 한기총이 세습지지파의 중심축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 그룹은 세습이란 용어자체의 사용을 반대하고, 교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세습의 장점을 강조하며, 적절한 자격과 자질을 겸비하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결정된 청빙은 세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교회 세습을 십자가의 결단으로 미화했고, 성공한 세습사례를 열거하며 세습을 정당화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세습 반대운동을 개교회의 특수성과 자율권을 침해한 부당한 간섭과 월권으로 규정하였으며, 교회 내적 문제를 세상에 폭로함으로써 교회 명예를 실추시킨 자해행위라고 경고했다. 둘째, 기윤실 등의 시민단체들과 이들을 지지한 학자들이 세습반대파를 구성했다. 이들은 교회 세습을 성경적, 역사적, 윤리적, 선교적 차원에서 근거가 없는 반신학적 행위로 진단했다. 동시에, 목회자의 과도한 독선과 욕심에서 비롯된 반교회적 행태요,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우상숭배적 죄악이라고 교회 세습을 날카롭게 공격했다. 끝으로, 온건한 입장에서 한국 교회의 개혁을 요청하던 중도파가 있었다. 이 그룹은 기본적으로 교회 세습에 비판적이었지만, 교회 세습을 반대할 명백한 신학적 근거가 없고, 개교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이들은 교회 세습 문제에 대한 교단 혹은 법적 통제를 지나친 간섭으로 비판하면서, 개교회가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절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세습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일차적으로 주목할 것은 1997년을 기점으로 세습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 IMF 이후, 국가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특히 교회성장이 멈추고 교세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그리고 무수한 신학교졸업생들 간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세습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사이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진 것이다. 대형교회에서 은퇴하는 목사와 다수의 성도들은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안정적 성장을 보장할 최선의 선택으로 부자세습을 추진·승인하는 반면, 반대파들은 공평과 정의를 근거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 교회 안에 깊숙이 스며든 천민자본주의의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했고, 한국개신교회가 이런 시대적 흐름에 가장 탁월하게 적응하고 기여했던 것이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급성장은 한국 교회의 대형화를 초래했고, 결국, 양적 성장이 시대적 에토스가 되면서, 물질적 성공이 축복의 가시적 징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빈과 희생이라는 고귀한 기독교적 가치는 비현실적 이상으로 멸시되고, 철저하게 현실적 논리와 이기적 욕망이 목회의 핵심원리로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 이런 정신에 사로잡힌 대형교회 목사들이 자식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목회적 결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세습과 원로목사제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교회 세습의 가장 현실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장기간 목회했던 목사들이 은퇴 후에도 지속적으로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자신들이 성취한 물질적·사회적 특권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은 이기적 욕망이다. 그리고 이런 욕망을 부추기고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원로목사제도다. 따라서 교회 세습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원로목사제도부터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목회자 세습 문제에 대한 싸움을 뒤로하여야 한다.’ 즉 극복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 교회가 점차 비대해 지면서 만든 공로목사 또는 명예목사제도,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는 원로목사 제도 등을 폐지해야 한다. 그러한 제도는 한국 교회의 제도화를 고착화시키는 제도임은 말할 것도 없고,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모든 제도를 과감하게 철폐하여야 한다.

 

동시에, 교회 세습은 담임목사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결과이므로,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세습방지는 더 이상 개인적 양심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기 때문에, 목회자의 전횡을 막기 위한 효율적 제도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삼종 대표(대전청년아카데미)임기제, 정관작성, 연봉제, 사무총회 권한강화로 한 사람이 주님의 교회를 지배하고 왕이 되어 우상처럼 섬겨지는 전횡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3. 2012-현재

 

1) 세습

 

지난 1년 동안, 4건의 주목할 만한 교회 세습이 이루어졌다. 제일성도교회(합동)가 은퇴하는 황진수 목사 후임으로 진웅희 목사를 청빙했다. 진 목사는 황 목사의 사위였다. 2011년에, 제일성도교회는 진웅희 목사를 후임으로 결정하고, 주보에 청빙목사로 이름을 올렸으나, 진 목사의 자격시비가 불거지면서 내분과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임시당회장뿐 아니라 황 목사와 교인 대부분이 진 목사 청빙을 반대하지 않고 있어서, 또다시 세습 절차를 밟아 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교회에서 더 이상 도덕성과 합법성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같은 시기에, 광명동산교회(합동)에서 교회 세습이 시도되었다. 이 교회를 개척했던 최성용 목사가 은퇴하면서, 자신의 아들을 새 담임목사로, 자신을 원로목사로 추대하려 했다. 하지만 취임예배에 아들 최정환 목사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교회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후임자 결정과정의 불법성이 드러나면서, 최성용 목사는 총회에서 제명되고, 아들의 청빙도 취소되었다. 이후 이수웅 목사가 교회에 의해 신임목사로 결정되었지만, 원로목사 측과 갈등이 벌어졌고, 교인들 간의 물리적 충돌과 법정싸움까지 벌어졌다. 갈등과 분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왕성교회(합동) 길자연 목사와 성남성결교회(기성) 이용규 목사가 연속적으로 부자세습을 성사시켰다. 왕성교회의 경우, 2003년에 지교회 형식으로 과천왕성교회를 세웠고, 2005년부터 길자연 목사의 아들 길요나 목사가 담임으로 사역했다. 왕성교회는 지난 해 325일 공동의회를 열어, 서울왕성교회와 과천왕성교회의 합병을 결의하고, 길 목사 부자를 동사목사로 임명했다. 일부 교인들이 회의소집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회의는 강행되었고, 거수로 모든 결정이 이루어졌다. 왕성교회는 108일에 다시 공동의회를 열고, 길요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길자연 목사를 원로목사로 결정했다. 성남성결교회는 2013120일 사무총회를 열고 세습을 확정했다. 성남성결교회는 이용규 목사 아들 이호현 목사를 후임 목사로 청빙하는 안건을 사무총회에 상정했고, 사무총회에 참석한 교인 211명이 만장일치로 청빙에 찬성했다. 세습결정을 비공개로 진행했던 왕성교회와 달리, 성남교회는 이 과정을 세상에 공개했다. 더 이상, 세습은 음지에서 결정되는 찝찝한 비리가 아니다. 두 교회 모두, 자신들의 결정이 절차상의 문제가 없고, 후임목사의 자격과 자질이 충분하며, 교회가 원하기 때문에, 세습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순번

연도

교회

교단

위치

전임자/후임자

관계

목회

지위

기타

1

2012

제일성도교회

합동

서울

황진수/진웅희

사위

개척

 

분쟁

2

2012

광명동산교회

합동

경기

최성용/최정환

아들

개척

 

분쟁

3

2012

왕성교회

합동

서울

길자연/길요나

아들

39

총회장

변칙

4

2013

성남성결교회

기성

경기

이용규/이호현

아들

개척

총회장

 

 

2) 저항

 

지난 10년과 달리, 2012년부터 진행된 세습은 교회 안팎에서 심각한 저항과 비난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지난 한 해 동안 교회 세습에 대한 관심과 저항을 촉발시킨 사건들을 살펴보자. 먼저, 2007년에 부당한 교회 세습으로 한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던 김창인 목사(충현교회 원로목사)가 갑자기 양심선언을 했다. 그는 2012612일에 열린 원로목회자 위로예배에서 성명서를 통해 충현교회 제4대 목사를 세우는 과정에 관여하면서 목회 경험이 없고, 목사의 기본 자질이 돼있지 않은 아들 김성관 목사를 무리하게 지원해 위임목사로 세운 것은 내 일생 일대 최대의 실수였다고 고백한 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저의 크나큰 잘못이었음을 회개 한다고 밝혔다. 김 목사의 공개적 참회가 교계 및 일반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면서, 한국 교회의 세습 문제가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한 달 후인 719일에 한기총은 후임 담임목사 청빙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여, “최근 K모 원로목사가 아들 목사의 문제로 한풀이 같은 발언을 하여 교계에 물의를 빚고 있으나, 이는 해당교회와 아버지와 아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며, 결코 한국 교회 전반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김 목사 참회의 의미를 폄하하고, “후임으로 세워질 분이 교회의 영적인 분위기와 조화롭게 맞고, 교회 후임 목회자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청빙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모델이 될 것이며 지극히 성경적이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영광된 징표인 것이다.”라고 세습을 두둔했다. 이에 대해, 기윤실은 2012724일에 한기총의 세습옹호 성명서에 대한 기윤실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통해, 한기총의 입장을 비판했다. 한기총도 726일에 담임목사 청빙 관련 기윤실 입장 표명에 대한 한기총의 입장이란 제목의 반박성명서를 발표하여, 기윤실의 비판에 반격을 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교회 세습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세습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대해, ‘미래목회포럼’(대표: 정성진 목사)2012828담임목사직 세습금지 입법을 지지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하자, 201291일에 감리교 세습의 핵심인물인 김홍도 목사가 조선일보시기가 왜 무서운 죄인가란 제목의 전면광고를 게재하여, 세습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반대세력을 정죄했다. 95,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홍도 목사 광고사건을 영적 치매로 비판했고, 김홍도 목사가 김동호 목사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이렇게 상황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925, 정동감리교회에서 열린 감리교 입법의회에서 세습금지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에 대해 교회와 사회 모두가 큰 관심을 보였고, 하나같이 한국 교회사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치하했다. 이에 자극 받아, 예장통합 평양노회(10. 22-24)교회 세습방지헌의안을 총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고, 112일에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공동대표, 김동호, 백종국, 오세택)가 공식 출범했으며, 1120일에 이 문제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KNCC도 세습근절을 다짐하는 총회선언문을 채택했다. 침묵하던 학자들도 발언대에 나섰다.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의 제26회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2013. 1. 18)에서, 한국 교회 영성과 세습이란 주제 하에 여러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발표자들은 대형교회의 세습이 성경적, 신학적,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3) 특징

 

먼저, 세습을 강행한 교회들 중 예장합동 교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둘째, 그동안 합동과 세습을 양분했던 감리교회 모습이 보이지 않는 반면, 성결교회(기성)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셋째, 예전보다 세습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더 크게 들려왔다. 현재까지 그 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교회가 대부분이다. 넷째, 교단총회장과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목사들의 교회가 세습에 성공함으로써, “한기총은 세습 왕국란 오명을 이어갔다. 다섯째, 세습한 교회들은 은퇴하는 목사가 개척했거나 40년 가까이 목회함으로써, 교회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망각했다. 그런 힘을 배경으로, 그들이 세습을 강행한 것이다. 여섯째, 세습을 둘러 싼 갈등구조가 더욱 명확해졌다. 한편에선, 대형교회와 한기총이 세습세력을 형성했고, 반대편에선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중심의 저항세력이 진영을 구축했다. 일곱째, 세습반대진영의 구성원이 변했고, 강화되었다. 감리교회가 교단적 차원에서 세습을 금지한 것, 통합 소속 노회가 동조한 것, 김동호 목사가 전면에 나선 것, 김창인 목사가 공개적으로 회개한 것, 일군의 저명한 학자들이 비판적 소리를 낸 것 등이 저항세력의 전력증강에 큰 보탬이 되었다. 여덟째, 세속언론이 교회 세습에 관심을 보이며, 반대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교회 세습은 더 이상 개신교의 내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심과 쟁점이 되었다.

 

4) 비판과 분석

 

세습을 강행한 사람들은 이전에 세습한 사람들의 논리를 반복했다. 이들은 계속 세습이란 용어사용의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그런 용어는 북한의 경우처럼, 법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경우만 해당되고, 자신들처럼 교단법을 준수하여 찬반투표를 통해 후임자를 결정한 것은 세습이 아니라, 후임목사 청빙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목회자로서 적절한 자격을 갖추었고, 교인들이 그를 목회자로 청빙하고자 한다면, 아들 신분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끝으로, 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것은 교회 형편과 상황을 모르는 외부인들의 과도한 간섭과 월권이며, 반대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좌파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이 같은 세습옹호론에 대해, 세습반대론자들은 대형교회 세습을 추잡한 세습으로 규정하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세습반대론자들도 모든 세습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서 힘겹게 사역하는 아버지 뒤를 잇는 것은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장려할 미담으로 언급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와 명예, 권세가 보장된 대형교회 담임목사직에 검증되지 않은 아들을 아버지의 힘으로 무임승차시킨 경우였다. 이런 견해는 세습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세습반대 진영에서 지배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조성돈 교수는 한국 교회 종교시장의 최근 상황을 고려할 때, 중소형교회의 세습도 대형교회 세습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30명 되는 작은 교회에도 부임하려면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른다. 이런 교회에도 담임으로 가기 위해서 꽤 복잡한 이해타산이 얽히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목회 세습은 대형교회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교회 간판이 걸려 있는 이상 목회세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목회세습은 한국 교회 전반에 걸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다. 그로 인해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소명만 있는 목회자들은 좌절에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의 대안으로, 두 가지 대안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첫째, 세습의 원인을 목회자들의 신학적 빈곤으로 진단하고, 교회론의 정립과 교육을 근본적 대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전국 목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회 목회자의 가장 부족한 점이 신학적 깊이’(38.6%)로 드러났다. 결국, 교회 세습은 안정적 성장이라는 현실적 이유와 왜곡된 교회론이라는 신학적 빈곤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따라서 신학생, 교인,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올바른 교회론 교육이 긴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둘째, 이미 한국 교회의 부자세습은 개인의 양심이나 교회의 합리적 결정에 의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감리교 세습방지법같은 구체적 법안을 교단적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형기 교수는 교단헌법에 세습금지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영한 교수도 감리교가 제정한 세습금지법은 장로교와 더불어 한국 개신교 모든 교단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1973년에 교회 세습을 이룬 도림교회부터 2013년에 세습을 완료한 성남성결교회까지, 40년간 한국 교회에서 이루어진 교회 세습 사례를 시기별로 구분하여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제, 각 시기마다 한국 교회의 세습과 이에 대한 저항운동의 특징을 간략히 요약하고, 개인적 견해를 첨가함으로써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교회 세습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시기적으로, 한국 교회의 세습은 1973년부터 공식기록이 나타나지만,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고, 2001년에 광림교회가 세습에 성공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이것은 IMF로 한국사회 전반에 위기의식이 고조된 것, 교회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안정적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 것, 1970년대에 목회를 시작했던 대형교회 목사들의 은퇴시기가 집중된 것 등의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1997년 이후로 교회 세습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교단적으로, 교회 세습에 성공한 교회들은 전 교단에 두루 분포되어 있지만, 합동과 기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합동과 기감의 신학적 차이가 분명하지만, 기감에서 세습을 감행한 목회자들은 정치적·신학적 측면에서 대단히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결국, 한국 교회에서 교회 세습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기총이 교회 세습을 옹호했다는 것도 이런 사실을 지지하는 증거다.

 

지역적으로, 교회 세습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곤, 경인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이것은 대형교회가 경인지역에 몰려있기 때문이겠지만, 대체로 수도권현상/도시현상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유일하게 비수도권지역의 세습사례로 알려진 대구서문교회도 농어촌지역이 아니라, 대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 광주, 대전, 울산 같은 지방의 대도시들에서 아직까지 주목할 만한 교회 세습이 보고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다른 분석이 필요하다.

 

목회자적 측면에서, 세습을 시도·완료한 교회들은 은퇴하는 목사들이 개척했거나, 20년 이상 목회하면서 교세를 크게 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대형교회 담임목사뿐만 아니라, 교단의 총회장이나 감독을 지냈다. 결국 그들은 자기 교회 내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교단차원에서도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런 권세와 지위가 교회 세습을 가능하게 만든 현실적 동력이었다.

 

다음으로, 교회세습반대운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시기적으로, 2001년에 광림교회가 세습을 시도했을 때, 최초로 반대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되었고, 2012년에 다시 한 번 강력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수많은 교회들이 부자세습을 완료했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저항과 비판이 없었다. 결국 주목할 만한 저항운동이 꾸준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형교회들이 파죽지세로 세습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적으로, 교회세습반대운동은 서울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이 운동을 주도한 단체들이 서울에 집중되었고, 지방에서는 아직까지 주목할 만한 세습사례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방에도 대형교회들이 존재하며, 세습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교회세습반대운동의 범주를 전국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이것을 가능하게 할 전국적 조직망을 갖추지 못한 것은 이 운동의 근본적 한계로 보인다.

 

주체적 측면에서, 그동안 반대운동이 기윤실, 교회개혁실천연대, 성서한국, 복음과상황, 뉴스앤조이 등 소수의 복음주의 단체들에 한정되어 왔다. 물론, 2000년에 감리교 내부에서 몇몇 단체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좀처럼 감지할 수 없었다. 특히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곤, 교회의 관심과 참여가 너무 미약했다.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의 참여도 너무 부족했다. 결국 이 교회세습반대운동이 보다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의 적극적 반응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여전히 소수의 주변단체들만의 운동으로 머문다면, 기대하는 결과를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단적으로, 교회 세습은 기감과 합동이 주도했다. 그런데, 최근에 기감에서 세습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교단적 차원의 교회세습반대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향후 한국 교회 전체에 큰 자극과 도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축인 합동 측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합동은 한국 교회 최대교단이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세습교회를 배출했다. 합동 측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함께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이 운동의 장래가 밝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반대운동은 합동에 좀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신학적으로, 교회 세습에 대한 학계의 반응이 대단히 미온적이었다. 물론, 몇 차례의 교회 세습관련 세미나와 포럼이 개최되어 몇몇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했고, 학술지와 잡지에 세습에 대한 비판적 글들이 수록되기도 했지만, 40년의 교회 세습역사에 비해, 그 양과 질은 대단히 실망스런 수준이다. 아직까지 교회 세습에 대한 제대로 된 학위논문이나 단행본이 출판되지 않았으며, 수많은 기독교관련 학회들에서 이 문제를 공식 주제로 삼은 적도 거의 없다는 사실에서, 이런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학자들의 관심과 연구가 절실히 요청되는 이유다.

 

운동방법론 측면에서, 그동안 반대운동은 성명서, 기도회, 포럼/세미나, 반대시위 등을 통해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 반대운동이 지난 20년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토록 열심히 기도했고, 성명서를 발표했고, 반대시위를 벌였지만, 단 한 차례도 대형교회 세습을 막지 못했다. 이것은 기존의 운동방식과 전략에 대해 뼈아픈 반성과 고민을 촉구한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대단히 힘든 싸움이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그럼에도 이 싸움을 계속 해야 한다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듯이, 보다 지능적·창조적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현실의 거대한 장벽 앞에,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왜소해 보일 때가 있다. 성경적 이상과 비정한 현실 사이에서, 기가 죽을 때가 있다. 기도도, 말씀도, 심지어 성령마저 대형교회, 정치목사, 교권 앞에서 무기력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정말,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면,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면, 구원의 능력이 십자가에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낙담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뿐이다. 십자가를 지고 오른 골고다언덕 너머에,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 : 학술 심포지엄 '교회세습, 신학으로 조명하다' 발제문
주최 :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일시 : 2013년 2월 19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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