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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습에 대한 조직신학적 고찰

 

 

현요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대형교회가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 대형교회들 중 상당수가 담임목사직 세습을 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CBS TV 뉴스는 한국의 굵직한 대형교회들의 담임목사직 세습의 사례들을 열거하며 보도한 바 있다. 그런 사례들 외에도 교차 세습, 격세 세습, 분리 세습, 사위 세습, 친인척 세습 등 여러 가지 변칙적인 세습의 사례들이 있다고 한다. 필자도 보도나 풍문으로 두 세 교회의 세습에 대하여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교회들이 세습을 하였다는 사실은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는 마치 대형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이 일종의 기독교계의 트렌드요 관행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저 어쩌다 한 교회가 세습을 한 상태이고, 그 교회도 세습 자체를 굳이 정당화하려는 입장이 아니라면, 필자는 이런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형교회들마다 너도 나도 세습을 감행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며,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요 일간지에 신문광고까지 내고 있으며, 아직 세습을 감행하지는 않았지만, 세습을 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교회들이 더 있다는 소식은 같은 기독교인이요 기독교 지도자로서 부끄러움과 더불어 자괴감을 금할 길이 없게 한다.

 

이 글에서 논하려고 하는 것은 영광과 특권을 세습하는 일부 대형교회들의 세습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지 모든 대형교회들이나, 모든 세습에 대하여 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정이 어려워서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농어촌의 작은 교회들과 도시 미자립 교회를 대를 이어 섬기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경우들은 세습이 아니라, 대를 이은 헌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교회 세습이 옳지 않다는 조직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이미 상식처럼 된 일에 관하여, 세속 정치나 기업에서도 세습을 좋게 보지 않는 것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새삼스럽게 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신학적 근거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운 일이다. 신학대학의 어느 동료 교수가 말하기를,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무슨 대단한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상식적인 것을 못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매우 정곡을 찌른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면서, 교회 일을 은혜스럽게 하자교회의 방식으로 하자고 하는데, “은혜스럽게 하자,” 혹은 교회의 방식으로 하자는 말은 상식과 세속적 표준을 초월해서 그것보다 뛰어난 일을 하자는 것이지, 상식이나 세속적 표준보다 못한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는 상식과 세속적 표준보다 못한 일을 은혜와 교회의 이름으로 하려는 것은 아닌가?

 

1. 교회론, 특히 교회의 주권의 관점에서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부르심을 받은 무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성령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거기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모여진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케 될 뿐만 아니라, 서로 서로 화목케 되어 올바른 사랑의 관계를 회복한 사람들의 공동체요 새로운 존재 방식이다(2:11-22).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성도들,’ ‘시민,’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성전(2:19) 혹은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고전3:9) 등으로 불려진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의하여 모여진 하나님의 백성이다(벧전2:9).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이제 교회는 유대인과 같은 특정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종과 성별과 빈부와 귀천을 뛰어 넘는 만민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또한 신약성경이 자주 사용하는 은유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고전12:27, 1:23). 그리스도는 이 몸의 머리요(1:22), 신자들은 이 몸의 지체들이다(고전12;27).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한 이 은유는 교회를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로 묘사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신비한 연합,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교제와 사랑,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 사이의 사랑의 교제와 연합 등을 함께 보여준다. 교회가 하나님의 권속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당연히 교회의 주()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값으로 산 것’(고전6:20)이 된 존재들이다.

 

교회를 이렇게 이해할 때,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 세습은 교회의 주님의 주되심을 부정하거나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특정 목회자와 그 가문이 교회의 주권을 차지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습을 하지 않았더라도 교회가 주님의 뜻과 주권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에 의하여, 그들의 권익과 명예를 위해 다스려지는 형편이라면, 그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 특정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그렇게 교회의 주권을 훼손하는 것이 더욱 명백히 드러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세습은 아버지가 당대에 교회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것을 자식에게로 이어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 세습은 대부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이끌어 온 대형교회들에서 일어난다. 그러한 교회들의 모습은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이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자발적 결사(結社)(voluntary association) 혹은 심지어 하나의 거대한 사설 기업체처럼 보인다. 여기에 모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관심사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대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제공하는 설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종교 프로그램의 유익을 누리며, 자발적으로 헌금을 바친다. 사실 그러한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 있어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의 역할이 지대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그러나 또한 쉽게 망각되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과 도시의 무수한 작은 교회들의 희생과, 열성적인 신자들의 헌신에 의하여 성장되었음도 함께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카리스마적인 그 목회자는 그 교회의 성장이 자신이 자수성가하여 이룩한 자신의 공적이요,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느끼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하여 아깝고 불안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기독교 협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표방하고, 그리스도를 설교하여 그렇게 이루어진 교회라면, 그들의 외형적 형태는 자발적 결사라 할지라도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요, 거기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목회자와 교인들의 겸손한 나눔과 섬김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목회자는 진정 주님의 종처럼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17:10)”고 고백해야 할 것이고, 임기를 마쳤으면 겸손하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습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교회들에서 목회자는 자신들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에게 주어지는 신자들의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거의 군주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결국은 그 권력을 당대에 누릴 뿐만 아니라,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세습을 감행하게 되는 모양이다.

 

2. 교회의 표징들의 관점에서

 

예로부터 교회는 교회의 중요한 특징들을 교회의 '표징(marks)'이라는 용어로 신앙고백에 담아 표현하여 왔다.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에서 형성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사도신조>는 교회에 관하여 거룩한 공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또한 주후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확정되어 발표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 교회에 관하여 네 가지 표징을 고백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one), 거룩하고(holy), 보편적이며(catholic), 사도적인(apostolic)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본성을 가진다. 이것은 서술적인(indicative)인 선언이며 고백인 동시에, 명령적인(imperative) 함의를 가진다. 예를 들어,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미 거룩하다(고전1:2). 그러나 교회는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명령 받는다(벧전1:16). 다시 말해서 이 네 가지 표징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근거로 교회에 부여된 서술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지상의 역사적인 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그것은 신적 근거를 가지는 동시에 여전히 유한하고 죄인인 인간들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교회는 그 네 가지 표징들을 자신의 행위와 삶을 통해서 드러내고 실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이 표징들을 무시하고, 올바로 실현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특징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회의 세습은 바로 이 표징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행위이다.

 

1) 교회 세습은 교회의 일치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하나이다(4:4-6). 교회의 하나됨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의 특징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교회의 하나됨은 새로운 교제의 특징이다. 교회는 교회 안에 여러 지체들이 존재하고 여러 지교회들과 여러 교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이다. 교회의 일치성은 획일적인 일치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이다. 교회의 일치성은 여러 다른 인종, 성별, 신분,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이루는 일치성이다. 그것은 위계질서적이고 수직적으로 강요된 일치성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평등한 지체들이 이루는 일치성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성령 안에서 성부와 성자가 이루는 공동체의 일치를 반영한다(17:21). 교회의 일치성은 무형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유형교회에도 해당된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212-31절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성에 대하여 말했을 때, 그는 분명히 유형교회인 고린도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교회는 이 일치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며 지켜가야 할 책임이 있다(4:3).

 

그런데 교회의 세습은 사회가 무어라 하든, 다른 교회야 어찌 되든 자신들의 교회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개교회주의적 발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아래에서 논할 교회의 거룩성과 보편성을 포함하는 교회 전체의 일치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또한 교회의 세습은 교회 안에 분쟁과 분열을 야기한다. 세습을 찬성하고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과 분쟁이 발생한다. 겉으로는 평화스럽고 정당하게 세습이 이루어진 것 같은 경우에도, 부당한 설득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세습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간혹 일치하여 세습을 결정하는 과정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는 모습이 아니라,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획일적으로 요구되는 일치성을 보여 준다. 어떤 사람들은 담임목사직의 세습이 원로목사 은퇴 후에 교회의 분쟁과 분란을 해소하는 방책으로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님이 드러났다. 한국 대형교회 세습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충현교회의 경우에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나서도 분란이 계속되었으며, 급기야 원로목사는 자신이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공개 고백하기까지 하였다.

 

사실 은퇴한 원로목사와 후임 목사 사이에, 그리고 그 양쪽 지지자들 사이에 분쟁의 사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교회가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정당한 절차에 의하여 신중하게 후임자를 선정하고, 원로목사는 은퇴 후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말고, 깨끗이 모든 교회 일에서 물러서며, 후임 목사도 원로목사를 존경하고 그의 업적을 존중하며 화합의 목회를 지향한다면 대부분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아름답게 세대를 이어가는 교회들도 많이 있다.

 

2) 교회 세습은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거룩하다. 교회의 거룩함의 근거는 교회 구성원들의 도덕적 우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사실에 근거한다. 교회의 거룩함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에 의하여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고전1:2)”이라고 불렀다. ‘거룩함이란 본래 하나님 자신의 속성이요, 그것이 피조물에게 적용될 때는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성격을 의미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에 참여함으로 거룩하다. 하나님의 사랑이 거룩함은 그것이 죄인들과 낯선 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이 주저함 없이 그런 사람들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죄인들을 의롭다고 받아 주시며 사랑하시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이다. 교회의 거룩성은 무형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유형교회에도 해당된다. 유형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이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원리상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사귐을 목표로 삼고 이루어 간다는 윤리적 의미에서 그러하다. 교회는 이 거룩함을 지켜, 거룩하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벧전1:16).

 

교회의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다. 교회의 세습은 교회의 목회직이 무슨 세속적인 권력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목회직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섬김의 직무이지 이권과 권력이 아니다. 그러나 세습은 목회직이 마치 세상의 전제 군주가 왕권을 세습하거나, 세상의 대기업 총수가 법망을 교묘히 피하여 경영권을 세습해주는 모습을 방불케 한다. 현대 민주 사회에서 그러한 왕권 세습이나, 불법적인 경영권 세습은 정당하다고 인정되지 않으며, 실제로 그런 일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 교회의 세습은 교회의 거룩성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원수 같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한다. 교회를 세습함으로써 교회의 거룩함은 속됨으로 왜곡되고, 거룩한 섬김의 직무는 지배하고 군림하는 권력으로 왜곡된다.

 

3) 교회 세습은 교회의 보편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보편적이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본래 catholic인데, 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헬라어 kataholos의 합성에서 온 말로서, 전 세계에 있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가리키며, 이는 교회의 전체성, 우주성 혹은 보편성으로 이해된다. 에베소서 1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하였다. 교회 안에는 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인종, 모든 국가, 모든 언어, 모든 성별, 모든 신분, 모든 연령, 모든 경제적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러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는 전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전체로서 교회는 그들 모두에게 보편적인 교회이며, 모두에게 공공성을 가지는 공교회(公敎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며(예를 들어 엡3:21), 지역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 된다(예를 들어, 2:1, 8, 12 18 ). 그러므로 교회는 한 지역에 존재하더라도 그 성격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며 공공적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특정인들의 의견을 대변하거나 특정인들의 이익과 권력에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다. 교회의 보편성은 교회가 하는 말이나 일의 공공성(publicness)과 연결된다. 빈센트(Vincent of Lerins)는 보편성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내린 바 있는데 그것은 언제나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믿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교회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다.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해치고 교회를 사유화(私有化) 혹은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하는 것이다. 교회의 사유화란 교회라는 공적 단체를 사적인 소유물로 만드는 것이다. 세습은 그러한 사유화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세습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은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더라도 교회의 모든 재산의 명의는 교회가 가입한 유지 재단 혹은 교회가 설립한 법인으로 되어 있으며, 재산권을 비롯한 교회의 모든 권리의 행사와 의사의 결정은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교회들에서 의사결정 과정이나 재산권의 실제적 행사는 카리스마적인 담임목사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민주적 절차들과 장치들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들의 실제 운영은 거의 요식 행위에 불과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결국 교회의 모든 일들은 담임목사의 뜻에 의해 좌우되고 만다. 교회 재산의 명의가 누구의 것으로 되어 있든지 중요한 것은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사사화의 모습은 교회를 공적인 영역의 일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의 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주의적 사상이 팽배한 현대 교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생각은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참여하는 일은 전적으로 개인의 사적인 영역의 일이며 누군가가 외부에서 간섭할 일이 아닌 것으로 만든다. 신앙은 우리들만의 일이니 우리가 어떻게 믿고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공공성 혹은 공교회성을 훼손한다. 교회를 세습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것은 자신들만의 영역의 일이므로 외부인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외부에서는 교회 세습이 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더욱 추락시키며 선교를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는 더욱 잘 성장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결국 공적 영역에서 교회의 존재 가치와 신뢰를 더욱 상실하게 만들고, 복음의 보편성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그 교회는 보편성과 공공성을 상실한 그들만의 교회가 되고 말며, 다른 교회들 즉, 전체로서의 교회는 신뢰성을 더욱 상실하고 오히려 선교의 장애를 겪게 된다. “그들만의 교회에서는 모든 권력이 담임목사에게 집중됨으로써 결국 교회가 단순히 교인 각자의 정신적 사사화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특정인이나 특정 가문을 위한 사사화의 길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은 교회의 보편성을 상실한 개교회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4) 교회의 세습은 교회의 사도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사도적이다. 에베소서 220절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하였다. 교회가 사도적이라는 말은 교회가 사도들이 전해 준 복음에 기초하여 있으며, 그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동방 정교회나 로마 천주교회에서 사도성은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통하여 내려 온 성직자의 권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교회의 사도적 계승은 그러한 외적 행위나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과의 내용적 연속성, 초기 사도적 교회와의 내적 사귐과의 연속성과 통일성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초기교회에서도 사도들이나 선임 주교의 안수 없이 교직자들이 세워졌던 일들이 있었다. 또한 로마 천주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라는 주장이나 로마 교회의 수위권은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장이다. 또한 사도성은 단지 안수 받은 주교나 사제들에 의해서만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선포하고 세워가는 전체 공동체에 의해 계승된다. 사도성은 사제나 목사들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을 통해 계승된다. 모든 신자들은 세상을 향해 파송된 복음의 증인들이다.

 

교회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사도성을 훼손한다.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것은 마치 어느 특정 목회자의 가문만이 그 교회에서 복음을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만든다. 그리하여 교회의 사도성은 특정인의 가계 연속성 안으로 해소되어져 버린다. 교회는 특정 가문의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그리스도로부터 처음 복음을 받아서 전파한 사도들과의 내적 연속성 안에 있다. 그러나 교회 세습은 결과적으로 특정 가문의 목회자만이 복음을 설교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듦으로써, 교회를 사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특정 가문의 단체로 변질시킨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그런데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이러한 교회의 근본적인 표징들을 훼손한다. 요컨대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심이 재확인되어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카리스마적인 담임목사도 아니요, 스스로 무슨 기업체 대주주들로 구성된 이사회처럼 생각하는 장로들도 아니다. 또한 교인들의 총회도 교회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모두 겸손하게 그야말로 교회의 주인이신 그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3.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를 전파한다. 우리의 신학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우리의 신학은 우리의 말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행동과 삶으로 나타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말 보다는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과 우리가 하는 행동이 보다 더 우리의 신앙과 신학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교리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입신양명과 부귀 강녕만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진정한 신학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하여 말하거나 기도하면서도, 실제로 행동할 때는 자신의 이익과 권리만을 위해서 행동한다면, 우리의 신학은 어디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신학은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삶, 교회의 삶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반영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교회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교회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렇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해야 한다. 본회퍼는 교회를 현존하는 그리스도요,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우리의 신앙과 신학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거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어떤 그리스도이고, 우리가 행동으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우리의 주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다(17:1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왕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그분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자기를 낮추어 사람이 되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으며(2:5-8),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으며,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시다.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폭력적 힘으로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지도자이며 섬기는 왕이셨다. 우리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인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런 제자인가?(9:23) 우리가 대표하고 증거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전제군주적으로 군림하는 신인가 아니면 예수 안에서 자기를 낮추고 오셔서 섬기는 바로 그분인가? 우리가 대표하고 증거하는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도 무시하고 자기의 뜻을 관철하는 폭군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 사랑과 의를 동시에 이루어 가시는 겸손한 하나님인가? 오늘날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대형교회들은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는가?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다(10:37)”고 하셨는데, 왜 사람들은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는가?

 

교회는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는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섬기며, 그것을 실현해 가는 공동체이며, 그리스도 자신의 지상적이고 역사적인 실존 형태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모든 사람들의 나라의 잠정적인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반영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이다.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는가? 그것은 오히려 세속적인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 왕의 모습을 왜곡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본다면 교회 세습의 문제는 단지 윤리 도덕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학의 문제가 된다. 물론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어떤 교회도 완전하게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하나님 나라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교회는 없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에 누구나 다 약점과 잘못이 있다. 문제는 그 약점과 잘못에 해당하는 담임목사직 세습을 억지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4. 교직자 소명론, 청빙론의 관점에서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론이 맹렬하게 일어나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목회자 청빙(부르심)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세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세습이라는 용어와 관점 자체가 세속적인 것이며, 교회는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절차에 의해 적합한 사람을 다음 목회자로 청빙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전직 담임목사의 자식도 배제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면 이 주장에 대하여 살펴보자.

칼뱅은 교역자(주로 목사)가 정식으로 세움을 받는데 있어서 두 가지 요소를 말한다. , 각 사람이 하나님 존전에서 의식하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소명, 즉 내적 소명(inner calling)과 신자들(교회)이 어떤 신자의 자질과 자격을 보아서 선택하는 외적 소명(outer calling)이 그것이다. 그러나 칼뱅은 전자에 대하여 우리가 직책을 받은 것은 야망이나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교회를 세우려는 욕망에서라고 하는 마음으로부터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할 뿐, 주로 후자에 대하여 취급한다. 그런데 악한 자도 그의 악함이 드러나지 않으면 교회에서 정당하게 부름 받을 수도 있으므로, 확실히 하기 위해서 경건과 학문, 그리고 선한 목자의 다른 여러 가지 은사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 은사들은 말씀에 대하여 잘 알고 가르쳐야 하며, 윤리적인 삶에 있어서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의 선택의 증거로 보면서 가장 적격인 사람을 교역자로 선출하는데, 칼뱅은 그 과정을 투표를 통해서 한다고 한다. 투표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사도행전 1423절의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인데, 이 때 택한다는 말, χειροτνεω의 뜻 중에는 손을 들어 선출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내적 소명에 대하여 살펴보자. 목사의 자녀가 다시 목사로 부름 받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그런 부르심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 삼는 일은 세습하는 교회들의 담임목사의 자녀들이 과연 모두 그 아버지가 일하던 그 교회로 부르심을 받는 것에 관한 진정한 내적 소명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적 소명은 내적인 문제인 만큼 다른 사람이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오늘날 한국의 여러 대형교회 세습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내적 소명에 근거한 것이라고 믿어야 할까? 초기 교회의 사도들이나 감독들이나 교역자들 중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일들이 유독 현대 한국 교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칼뱅은 내적 소명에 관하여 우리가 직책을 받은 것은 야망이나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교회를 세우려는 욕망에서라고 하는 마음으로부터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과연 세습을 감행한 목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에 이러한 내적 증거가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다 알 듯이, 그리고 본인들이 시인하듯이,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낫다는 극히 사적인 동기가 지배적임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을까?

 

외적인 소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습을 감행하는 교회들은 그 결정 과정이 절차상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외적 소명의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후임 목사 자신의 능력과 인격과 자질이 교인들로부터 정당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절차였는지 의심하고 있다. 그 절차가 동일하게 혹은 보다 탁월하게 유능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다른 목사들에게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 받고 청빙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그런 절차를 정당한 청빙이라고 할 수 있을까? KBS 보도에 의하면, 지난 1997, 충현교회의 부자 세습에는 여러 가지 편법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한 김성관 목사가 목회경력 5년이라는 자격 조건을 채우지 못하자 그 조건을 회칙에서 삭제했고, 미국시민권이 문제가 되자, 시민권을 나중에 포기하기로 하고 청빙안을 올렸으며, 비밀투표가 아닌 찬반 기립 방식으로 표결을 했다고 한다. 또한 201210월 왕성교회의 세습 결정 과정도 문제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세습 결정을 위한 공동의회에서는 회의 순서도 배포되지 않았고, 아들 목사로의 승계의 건은 그 자리에서 처음 공식화되었다고 한다. 30분 가량 아들 목사에 대한 찬양과 승계를 정당화하는 발제가 이루어졌으며, 그에 대한 반대 토론과 이의 제기는 모두 거부되었으며, 비밀투표를 위한 기표소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투표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측은 어디서 반대 몰표가 나왔는지까지 파악하고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사전에 찬성표를 유도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치밀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담임목사가 장로들에게 전화해서 협조를 구하고, 부목사들이 신자들에게 전화해서 협조를 구하는가 하면, 공동의회가 있기 전날 청년들을 따로 모아서 찬성표를 찍도록 교육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형편을 과연 정당한 청빙 절차요, 정당한 외적 소명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설사 형식적으로 어떤 복수 후보들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아들 목사는 이제 원로 목사가 되는 부친의 카리스마적인 영향력의 후원을 받고 있는데 공정한 심사가 가능한가? 또한 세습이 예상되는 자녀가 이미 그 교회 안에서 교역자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설사 외부인 후보자가 있더라도 과연 동등한 심사가 가능한가? 이러한 사정은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면서 어떤 선수는 50m 쯤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맺는 말

 

지금까지 대형교회의 세습이 왜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았다. 교회론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주권을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에게 돌리는 것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말하는 교회의 네 가지 표징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의 세습은 교회의 일치성을 훼손하며,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며, 교회의 보편성을 훼손하며, 교회의 사도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보면 교회의 세습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를 올바로 반영하지 못하는 행위이고, 그것은 교회가 말과 행위로 전파하는 하나님 상, 그리스도 상,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일이 된다. 또한 소명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도, 교회 세습이 정당한 소명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교회 세습은 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신학적으로 고찰하기 이전에 이미 사회인들은 그것이 상식 이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습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성을 더욱 실추시키는 일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복음 전파를 더욱 어렵게 하고, 교회로 하여금 사회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변혁적 능력을 상실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렇게 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필자는 스스로 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만이 의인이고, 우리만이 참된 신앙과 신학을 가진 자들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시대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는 대형교회들의 잇따른 세습이라는 이 사안을 신학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당시 시장에서 팔던 우상의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문제에 관하여 말하기를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10:23)”라고 말했다. 그런 고기를 먹는 것은 바울로서는 거리낄 것이 없는 문제이지만 다른 신자들의 믿음을 위해서는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다 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세습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서 세습을 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이제 또 세습을 하려는 이들이 있어서, 자기 스스로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설령 정말로 그 아들 목사의 능력이나 자질이 정말로 탁월해서, 그 교회 교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그것이 전체 한국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다면 흔연히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전체 한국 교회를 살리는 일이다. 그분이 정말 그렇게 훌륭한 분이라고 하면, 그분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길을 갈지라도, 다른 많은 교회들이 그를 청빙하기 원할 것이고, 훌륭하게 그 일을 감당해 낼 것이다. 혹은 스스로 나아가 개척을 할지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부친이 사역하던 교회를 세습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가? 그런 능력 있는 분들이 독자적으로 나아가 또 다른 아름다운 사역들을 일구어 낸다면 한국 교회는 더 생기가 돌고, 더 희망차지 않을까?

 

 

 

출처 : 학술 심포지엄 '교회세습, 신학으로 조명하다' 발제문
주최 :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일시 : 2013년 2월 19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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